갈 곳이 없다‘PARE!’모든 길이 ‘pare!(stop)’를 외치며 우리를 막아선다. 갈 곳이 없다. 아르헨티나 국립공원 폐쇄를 현실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린다 비스타 사장님과 우리는 그래도 들어갈 방법이 있지 않겠냐며 포기하지 않고 이곳저곳을 찔러본다. 모레노 빙하로 들어가는 뒷문 격인 작은 출입구 앞에서 돌아선다. 가이드를 겸한 운전기사는 먼 곳을 손으로 가리키며 ‘모레노 빙하’라고 말한다.연한 잇몸 위로 보일 듯 말 듯 하는 갓난아이의 젖니처럼 하얀 선이 보인다. 카메라를 당겨 보니 해상도가 떨어져 도저히 빙하로 받아들일 수
“이곳은 위험해. 떠나자”폭죽 터지는 소리다. 한낮의 불꽃놀이…? 걸음을 멈추고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린다. 저 장면, 이 냄새! 낯설지 않다.군중이라고 하기에는 초라한 몇몇 사람들이 돌멩이를 던지고, 그에 맞서 엇비슷한 인원의 경찰인지 군인인지 구별할 수 없는 이들이 최루탄을 던지고 있다.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보게 된 장면에 잠시 눈길을 주듯, 그렇게 시선이 머물다 무심히 돌아선다. 지금 우리는 쫓기듯 푼타아레나스를 떠나기에 감정을 덧대어서는 힘들어진다.환불받지 못한 2박의 숙박비보다 더 아깝고 안타까운 푼타아레나스에서
검역견이 우릴 먼저 맞이했다“Muy Bien, Muy Bien!” 개가 짐에 코를 박고 킁킁거릴 때마다 총을 찬 검역관은 만족한 얼굴로 ‘Muy Bien(매우 잘했어)’을 외친다. 개가 뒤적거린 짐은 검역관이 따로 짐 검사를 한다. 마약견이 아니라 농산물을 찾는 개다. 농산물은 칠레 입국 시 금지 물품이다. 우리도 먹다 남은 바나나를 아르헨티나의 마지막 휴게소 쓰레기통에 버렸다. 칠레 입국 소에 도착하니 검역관이 개를 데리고 버스에 탄다. 개는 버스 안의 좁은 통로를 다니며 승객들 쪽으로 기웃거리며 킁킁거린다. 개의 1차 검역이 끝
세상의 끝. 공기가 푸르다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오전 4시에 출발한 비행기는 아침 7시 30분에 우리를 세상의 끝으로 데려다 놓는다. 어제까지 입고 있던 반팔의 티셔츠 위에 두꺼운 패딩 점퍼를 껴입는다. 고작 3시간 30분을 날아와 공간 이동을 했을 뿐인데 여름 티셔츠 위에 껴입은 겨울 점퍼처럼 한 계절을 건너와 버렸다. 공항 밖을 나오니 음이 소거된 도시마냥 조용하다. 공기에도 색이 있구나, 푸르다! 남극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라는 생각 때문인지 코끝에 스치는 바람이 싸하다. ‘Fin del mundo, Ushuaia!’ 이곳은 세상의
160년이 넘은 ‘카페 토르토니’“깜비오! 깜비오!”깜비오(환전)를 속삭이는 아르헨티노는 계산기를 우리 앞에 내민다. 우리가 정해놓은 숫자를 내민 아르헨티노와 협상을 끝낸 우리는 그를 따라 간다. 긴장한 티를 내지 않으려 하나 우리 셋은 마치 첩보 영화를 찍는 배우들 마냥 주위를 경계하게 된다. 낯선 상가 사무실에 도착한 그는 그곳에 있는 다른 아르헨티노에게 우리를 넘기고 사무실을 나가버린다. 아주 잠시 대화를 나누고 그를 따라 이곳까지 왔을 뿐인데, 그에게 버림받는 느낌이다. 남편과 내가 환전을 하는 동안 우리의 어린 첩보 요원은
산텔모 시장서 본 탱고 거리공연“과테말라~” “콜롬비아~” “이탈리아~”자신의 나라 이름을 외치며 환호성을 지르는 여행자들. 그에 부응해 박수로 답하는 사람들.“코리아~~~”라고 목청껏 외치고 싶으나 나와 아이는 열심히 박수만 치고 있다.나의 조국이 부끄러운가? 아니지, 아니야. 결코 그런 건 아니야.산텔모 시장에서 탱고 거리 공연을 하는 댄서들은 각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을 거리 공연장으로 이끌어 내기 위해 여행자들의 조국이 어디인지 묻는다. 여행자들은 조국의 명예라도 지키려는 듯 자신의 나라 이름이 불리면 당당히 나가서 춤을 추고
해발 3,600m→43m 내려 온 감격 “Muchas gracias!”해발 3,600m에서 해발 43m로 내려온 것이 몸으로 느껴진다. 코로만 숨을 쉬어도 괜찮다. 뛰어다닐 수도 있을 것 같다. 고도가 높아지면 산소가 희박해진다는 것을 책에서 배웠다. 산소가 부족하면 나타날 수 있는 증상들도 정보를 통해 알고 있었다. 머릿속으로 알고 있는 증상들이 몸으로 나타났을 때 비로소 난, 머릿속으로 알고 있는 지식이 몸의 통증을 줄여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고도를 몸으로 체감하자 우리나라의 고도도 궁금하다. 찾아보니 약 448m다.
신들의 도시, ‘테오티우아칸(Teotihuacan)’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숙제가 있다. 멕시코 여행 계획을 짜며 ‘반드시 가야할 곳’ 목록에 오른 곳을 가야 한다. 내가 여행을 하면서 ‘반드시 ~것’의 리스트에 올리는 것은 두 가지 이유 중 하나일 경우이다. 내가 원하거나, 그곳을 찾는 다수가 원하여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다 결국은 나조차도 원하게 되는 것. 물론 남은 숙제는 후자다.신들의 도시, ‘테오티우아칸(Teotihuacan)!’ 인터넷의 정보는 세계사 시험을 치기 위한 이들에게 필요한 정보들이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멕시코대통령궁에 얽힌 비운의 역사줄이 길다. 줄이 긴만큼 기다림의 시간도 길어지고 있다. 한 명의 아이가 줄에서 빠져나와 건물 벽에 붙여 놓은 바리케이드를 놀이터 삼아 놀기 시작한다. 또 한 명의 아이가 바리케이드 놀이터로 간다. 기다림에 지친 아이들은 하나둘씩 바리케이드로 모인다. 한국에서 온 아이도 예외는 아니다. 아이들은 자신들과 다르게 생긴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바리케이드 사이를 오가며 놀고 있다. 민주는 모자를 눌러 쓰며 철봉에 매달리듯 바리케이드에 매달린다.멕시코대통령궁(Palacio Nacional) 입장은 생
출발 날짜가 가까워질수록 걱정 심해져“엄마 여행 가서 우리 중에 누가 죽으면 어떻게 해?”우리의 첫 여행지가 멕시코라는 말에 예상 밖이라는 표정들이다. 여행이 익숙하지도 않은데 처음부터 힘든 곳을 간다는 반응이다. 걱정하는 마음에 해주는 이야기들로 만나보지도 못한 멕시코 강도에게 이미 영혼이 탈탈 털린 듯하다. 이모부가 목에 걸어 준 비상용 호루라기를 만지며, 내뱉는 아이의 말이 과장으로 들리지 않는다. 여행을 준비하며 아슬아슬 균형을 잡고 있던 ‘설렘과 걱정’은 출발 날짜가 가까워질수록 걱정에 무게가 실리기 시작하며 감정의 저울이
땅 밑 물길로 차가 달려터널이다. 한 줄의 직선으로 쭉 뻗은 길이 아니다. 여러 갈래의 터널이 나온다. 동굴 같다. 이상한 터널이다. 이상한 터널을 빠져나오니, 중세 유럽풍의 집들이 예쁜 작은 마을이 나온다. 과나후아토다. 과나후아토를 걸어 다니다 보니 곳곳에 지하로 이어진 길이 보인다. 그 길에서 차도 나오고, 사람도 나온다. 마치 과나후아토 아래에 개미집처럼 여러 갈래 길들이 있는 건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궁금하다.“아, 지하차도요? 그게 원래는 지하 수도였어요. 홍수와 산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만든 지하 수도였는데,
“불빛이 창원 같아”“엄마, 저 멀리 불빛이 창원 같아 ….”태양이 사라졌음에도 아직 어둡지는 않다. 구름 가장자리로 태양이 남기고 간 빛들이 물들기 시작하자, 도시의 집들도 하나씩 불이 켜진다. 창원 생각이 난다는 아이의 얼굴이 노을빛으로 젖어드는가 싶더니, 이내 어두워진다. “친구들 보고 싶어 ….” 어둠도 빛도 힘이 들어가지 않은 시간이다. 이 시간 즈음의 불빛은 어둠을 밝히기 위함이 아니다. 이 시간 즈음의 불빛은 잊고 지내다 보니 잃어버린 기억을 비춘다. 추위에 떨며 야경을 감상한 탓인지, 친구가 그리운 탓인지 아이는 물기
‘그래, 감으로 하면 되는 거야!’긴장이 되긴 하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남편에게 내뱉는다.“앉아 봐, 내가 시원하게 밀어 주겠어!”장기 여행자들 중 직접 머리를 깎으며 다니는 이들도 있다기에, 우리도 바리캉과 미용 가위를 준비해 왔다. 바리캉으로 머리를 미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는 말을 들었다. 한 번도 해 보지는 않았지만 헤어디자이너 지인이 하는 것을 보며, 눈으로 귀로 배웠다. 옆에서 몇 번 보니, 충분히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기기도 했다. 처음 든 바리캉 ‘하얀 땜빵’비닐봉지를 대충 잘라 목에 두르고 과감하게 남편의 목
아이는 공항에서 사귄 이스라엘 언니와 놀고 있다. 20대 초반의 갈색 머리 어른과 10살의 검은 머리 아이는 머리를 맞대고 공항 바닥에 엎드려 그림을 그려가며 게임을 하고 있다. 비행기 연착이 1시간씩 길어지고 있다. 1시간 20분이면 닿을 수 있는 칸쿤은 점점 멀어져 간다. 생일 선물로 불러준 한국어 축하 노래“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친구의 생일 축하합니다~”이스라엘 여행자는 친구의 생일 선물로 여행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그들의 모국어로 부른 생일 축하 노래를 선물로 주기로 했다며, 우리 가족에게 한국어로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
어린 시절, 10시간을 넘게 버스를 타고 달려갈 만큼 큰 땅덩어리를 동경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그곳에서 트럭을 모는 것이 꿈이었다. 멕시코시티에서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카사스’까지 버스로 15시간이 걸린다. 내가 모는 트럭은 아니지만, 긴장된다. 창원에서 버스로 15시간을 달려가면 어디에 도착할까? 통일이 돼야 가능하다는 생각에 씁쓸해진다. 출발까지 2시간이 남았다. 창가에 배낭을 쌓아놓고 창에 기대 서 있다, 이내 바닥에 앉는다. 우리 셋은 가방을 지키며 어딘가에 있을 배낭 도둑을 경계하고,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유괴범
태평양과 대서양의물이 하나 되는 감동, 파나마 운하 “엄마, 화장실에 물이 내려가!”파나마시티 공항 화장실에서 아이는 소리를 지르며 기뻐한다. 화장실 변기의 레버를 누르면 물이 쏟아져 내려오며 오물을 씻어 준다는 사실이 새삼 감사하다. 우리의 의식 속에 들어오지도 않을 정도로 당연시되던 일들이 당연하지 않은 사회에서 지내다 오니, 모든 것이 감사하다. ‘쿠바’라는 공간을 다녀왔는데, 마치 우리는 몇 십 년 전으로 시간 여행을 다녀온 듯하다. 파나마시티는 그런 의미에서 또 다른 시간 여행의 공간이다. 과거에서 미래로 온 듯 높은 빌딩
트리니다드에서부터 타고 온 택시는 우리를 마을 한가운데 내려주고 떠난다. 쁠라야 히론(Playa Giron)이다. 조용하다. 지나가는 사람도 높은 건물도 보이지 않는다. 마당이 있는 단층집들이 드문드문 보일 뿐이다. 한국 여행자들의 칭찬 일색인 까사에는 역시, 빈 방이 없다. 다행히 근처에 깔끔해 보이는 까사가 있다. 숙소에 짐을 풀고 쉬고 있으니 휴대폰에서 신호 연결음 소리가 난다. 인터넷이 된다. 뜻하지 않게 쿠바에서 최고의 숙소를 시골 마을 쁠라야 히론에서 만난 셈이다. 쿠바에서 인터넷이 된다는 것은 횡재 중의 횡재이니 말이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Buena Vista Social Club)! 나에게 쿠바는 음악이다. 말레꼰을 부숴버릴 듯 부딪쳐오며 스스로 부서지는 하얀 파도를 배경으로 깔리는 ‘Chan Chan(찬찬)! 스트로크 주법으로 치는 어쿠스틱 기타와 젬베의 리듬에 이어지는 고음의 트럼펫 선율을 듣는 순간 코끝이 찡해오며 근원을 알 수 없는 설움이 목 아래 깊은 곳에서 올라온다.쿠바 음악은 마치 말할 수 없이 큰 슬픔을 현란한 리듬과 비트로 덮은 뒤 슬프지 않은 척 하는 느낌이다. 감추려 덮어 놓은 현란한 리듬을 걷어내고 슬픔을 보아 버린 벌
어딜 가나 CHE다. 쿠바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눈길 닿는 곳엔 여지없이 체 게바라의 얼굴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티셔츠에, 비스듬히 눌러 쓴 베레모에, 큰 칼로 돼지고기의 목살을 잘라주는 정육점 아저씨 뒤 낡은 시멘트벽에. 체 게바라에 대한 책 한 권 읽지 않았다. 영화 포스터가 마음에 들어 구입한 DVD는 체 게바라가 남미 횡단 여행을 시작함과 동시에 나 또한 꿈나라 여행을 떠난 탓에 미처 다 보지도 못하고 여행을 떠나왔다. 혁명, 투쟁, 해방, 게릴라그의 삶은 모른 채 지나가는 풍월로 들은 단편적인 정보
트리니다드, 여행자가 쿠바에 기대하는 모든 것이 존재한다는 곳.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 도시라는 이름에 걸맞게 16세기에서 시간이 멈추어버린 듯한 마을.여행자가 기대하는 모든 것들의 존재 오래된 벤츠, 쿠바 올드카의 클래스 만끽벤츠다. 역시 쿠바다. 그래 올드카라면 저 정도는 돼야지. 깔끔한 복장의 택시기사는 마치 5성급 호텔의 호텔리어처럼 차 문을 열며 우리를 맞이한다. 우리 역시 5성급 호텔에서 자고 나온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차에 오른다. 벤츠는 아바나에서 트리니다드로 우리를 데려다줄 쿠바의 택시다. 먼 길 떠나는 날이라 신경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