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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50에 배낭 메고 떠난 남미 가족 여행 29화

우리를 허락하지 않는 파타고니아, 칠레, 아르헨티나

  • Editor. 월간경남
  • 2022년 11월호
PARE, 그만! 여기까지 더 이상 오지말라고 막고 서있다. 아르헨티나에 들어갈 수 있을까
PARE, 그만! 여기까지 더 이상 오지말라고 막고 서있다. 아르헨티나에 들어갈 수 있을까

 

“이곳은 위험해. 떠나자”

폭죽 터지는 소리다. 한낮의 불꽃놀이…? 걸음을 멈추고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린다. 저 장면, 이 냄새! 낯설지 않다.
군중이라고 하기에는 초라한 몇몇 사람들이 돌멩이를 던지고, 그에 맞서 엇비슷한 인원의 경찰인지 군인인지 구별할 수 없는 이들이 최루탄을 던지고 있다.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보게 된 장면에 잠시 눈길을 주듯, 그렇게 시선이 머물다 무심히 돌아선다. 지금 우리는 쫓기듯 푼타아레나스를 떠나기에 감정을 덧대어서는 힘들어진다.
환불받지 못한 2박의 숙박비보다 더 아깝고 안타까운 푼타아레나스에서 잃어버린 48시간은 코끝을 매콤하게 하는 최루탄 가스를 핑계 삼아 나의 등을 떠밀고 있다.
‘어서 여기를 떠나, 이곳은 위험해!’
푼타아레나스에서 버스로 3시간 30분을 달려 푸에르토 나탈레스에 도착해 혹시 하는 마음에 확인한 아르헨티나 엘 칼라파테행 마지막 버스는 역시 떠나고 없다. 예정대로 푸에르토 나탈레스에서 하루를 묵어야 한다.

 

푸에르토나탈레스. 토레스 델 파이네 트레킹의 베이스 캠프다
푸에르토나탈레스. 토레스 델 파이네 트레킹의 베이스 캠프다
국경이다. 칠레 국기가 휘날리니 이곳은 칠레땅
국경이다. 칠레 국기가 휘날리니 이곳은 칠레땅
앞뒤로 배낭을 멘 모습, 내가 좋아하는 모습이다
앞뒤로 배낭을 멘 모습, 내가 좋아하는 모습이다

 

국경 폐쇄 전 아르헨티나로 결정

칠레의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아르헨티나로 들어가기로 했음에도 우리의 판단이 옳은지 알 수 없다. 아르헨티나 여행을 마치고 다시 칠레로 나오려는 계획은 막연하다. 칠레가 국경을 폐쇄하면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릴 계획이다. 우리의 판단을 믿을 수 없기에 갈등할 수밖에 없다.
‘아르헨티나가 진짜로 국경을 폐쇄한 걸까? 여기까지 왔는데, 토레스 델 파이네 트레킹을 안 할 수 없잖아! 아니야, 하루 이틀 미루다 아르헨티나에 다시 들어가지 못한다면 모레노 빙하와 엘 찰텐은 어쩌라고? 칠레마저 국경을 폐쇄해버리면?’
푸에르토 나탈레스가 토레스 델 파이네 트레킹의 베이스캠프라는 사실이 파타고니아라는 장작에 불을 붙이고, 떠나버린 아르헨티나행 막차가 불씨에 기름을 붓는다. 삼삼오오 몰려 있는 여행자들은 같은 고민 중이다. 초면임에도 파타고니아를 향해 달려온 마음은 같기에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고, 더 나은 결정이 무엇일지 고민한다. 그래도 모레노 빙하와 엘 찰텐의 불타는 고구마, 피츠로이의 일출은 봐야지 않겠냐는 쪽으로 의견이 기운다. 결국 내일 아침 아르헨티나행 버스 티켓을 예매하고 터미널을 나선다.

 

저 멀리 보이는 물은 빙하가 녹아서 흐르는 물일까. 물 색이 뽕따 아이스크림색이다
저 멀리 보이는 물은 빙하가 녹아서 흐르는 물일까. 물 색이 뽕따 아이스크림색이다
남극이 가까운데도 나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푸르다
남극이 가까운데도 나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푸르다
한국돈 3000원 정도 가격의 소고기다. 간장불고기 양념한 고기를 먹으면 한국같다
한국돈 3000원 정도 가격의 소고기다. 간장불고기 양념한 고기를 먹으면 한국같다


한적했던 국경 도시… 버스 안 공기도 무거워

터미널 근처 호스텔에 짐을 풀고 목적지 없이 길을 나선다. 터미널에서 북적이든 여행자들은 다 어디로 숨어 버렸을까? 차도 사람도 다니지 않는다. 국경의 도시가 한적하다. 해가 지는 방향으로 가다 보니 레스토랑이 나온다. 기대 없이 들어간 곳이 동네 맛집인가 보다. 가족 손님과 동네 주민들 몇몇이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다. 여행자를 위한 음식점이 아닌지 간단한 영어가 통하지 않는다. 뭔지 모르고 대충시킨 음식이 그럴싸하다. 이곳에 며칠 더 머무르고 싶다. 동네 분위기가 좋아서인지 아쉬운 마음에서인지 우리도 모른다. 최근 며칠 동안 모든 것이 오리무중이다. 우리의 여행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겠다.
호스텔 부엌이 부산하다. 새벽부터 여행자들은 각자의 아침을 준비하느라 바쁘다. 라면 수프에 감자와 양파를 넣고 오래 끓이면 나름 든든한 한 끼가 된다는 사실을 최근에 알게 됐다. 추운 날씨에 제격인 음식이다. 라면 수프는 고향의 맛이다.
아르헨티나행 버스 분위기가 조심스럽다. 급작스러운 국경폐쇄로 구체적이고 명확한 정보가 없기에 우리의 입국허가 여부는 알 수 없다.
아이도 분위기 파악이 되는지 조용하다. 버스가 출발하자 남편은 아이에게 사탕, 초콜릿, 젤리를 내밀며, “민주야, 오늘이 화이트데이더라”고 말한다. 생각지도 못한 화이트데이 선물을 받은 아이의 표정이 순식간에 밝아진다.
신난 표정의 아이가 주는 사탕과 초콜릿을 받은 어른들의 표정도 밝아진다. 여행 중에 아이의 웃음이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경험을 여러 번 했다. 버스 안의 무거운 공기가 아이의 웃음으로 가벼워지는 것이 느껴진다.

 

빈 들판에 서 있는 건물, 관공서일 가능성이 높다. 사람이 산다면 정말 외로울 듯
빈 들판에 서 있는 건물, 관공서일 가능성이 높다. 사람이 산다면 정말 외로울 듯
해질 무렵의 엘 칼라파테.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고 있다
해질 무렵의 엘 칼라파테.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고 있다
호수를 바라보고 있는 견공! 무슨 생각에 잠긴거니
호수를 바라보고 있는 견공! 무슨 생각에 잠긴거니
조용한 도시 나탈레스. 공기도 차분하다
조용한 도시 나탈레스. 공기도 차분하다
엘 칼라파테행 버스. 아르헨티나로 들어가는 국경버스다
엘 칼라파테행 버스. 아르헨티나로 들어가는 국경버스다

 

파타고니아의 바람

나무 한 그루 찾아보기 힘든 광활한 지평선이다. 칠레와 아르헨티나 국경이라고 하지만, 어디 자연에 국경이 있던가! 끝도 없이 펼쳐진 빈 들판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자연의 살을 뚫고 꽂아놓은 칠레의 국기를, 아르헨티나의 국기를 마구잡이로 흔들고 있다. ‘여긴 바람의 땅이야, 어디 겁도 없이 이곳에 서 있는 거야!’
우린 이미 파타고니아 지역에 들어왔고, 차창 밖 풍경이 파타고니아인데, 난 왜 파타고니아를 찾아가려는 걸까. 파랑새를 찾아 나섰더니, 결국 파랑새는 집에 있더라는 동화의 재연인가. 토레스 델 파이네 트레킹을 하고 엘 찰텐의 피츠로이에서 불타는 고구마를 보아야 한다는 생각은 사대주의와 같은 맥락일까. 빈 들판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허영심으로 가득 찬 여행자의 허파에 구멍이라도 내려는 듯 무섭게 달려든다. ‘내가 파타고니아의 바람이다. 무엇을 더 바라는 거야!’

 

엘 칼라파테 중심부로 들어가는 길, 저 나무만 보고도 며칠은 살 수 있을 듯
엘 칼라파테 중심부로 들어가는 길, 저 나무만 보고도 며칠은 살 수 있을 듯
길가에 놓여 있는 벤치도 멋스런 엘 칼라파테
길가에 놓여 있는 벤치도 멋스런 엘 칼라파테

 

예상치 못한 국립공원 폐쇄

모레노 빙하를 보기 위해 엘 칼라파테에 왔으나, 모레노 빙하가 아니어도 엘 칼라파테는 우리 가족이 좋아할 요소를 갖추고 있다.
무엇보다 걸어서 다녀도 될 정도의 작은 마을이어서 좋다. 차가운 공기가 정신을 맑게 하고 시원스레 뻗은 가로수는 멋스럽다. 말을 탄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며 지나가고, 그 옆을 자동차가 지나간다. 개들은 인도와 차도를 가리지 않고 활보한다.

이 시대에도 말을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니, 신기하다. 말은 많이 비쌀까. 차보다 말을 타고 다니고 싶다
이 시대에도 말을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니, 신기하다. 말은 많이 비쌀까. 차보다 말을 타고 다니고 싶다

엘 칼라파테의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자유로운 공간이다. 그 길 위를 우리가 걸어간다. 조용하고 깨끗한 거리는 신뢰감을 주며 우리를 안심시킨다. 우리 가족의 여행 멘토가 추천한 숙소 린다비스타는 한국인들 사이에 유명한 호텔이다. 한국인 사장님은 모레노 빙하 투어와 피츠로이 트레킹에 대한 실질적인 정보를 제공하신다. 아르헨티나로 서둘러 들어오기 잘했다!

오크통의 빈 틈을 뚫고 피어난 꽃을 보라!
오크통의 빈 틈을 뚫고 피어난 꽃을 보라!
극지방의 꽃들의 색은 한 톤씩 가라앉은 느낌이다. 은은한 색감이 고급지다
극지방의 꽃들의 색은 한 톤씩 가라앉은 느낌이다. 은은한 색감이 고급지다
담이 없는 호텔 린다비스타. 호텔이 아니라 정원이 아름다운 일반 가정집 같다
담이 없는 호텔 린다비스타. 호텔이 아니라 정원이 아름다운 일반 가정집 같다

모레노 빙하 투어는 일요일까지 예약이 마감되어 다음 주에 해야 한다. 피츠로이 트레킹은 백팩킹을 하기로 했으니, 필요한 물품을 대여해야 한다. 피츠로이 트레킹이 끝나면 다시 칠레로 돌아가 파타고니아 여행을 마무리하면 된다. 아르헨티나의 폐쇄 소식에 주춤하던 여행이 다시 시작되고 있다.
갑자기 남미 여행 아르헨티나 단톡방의 알림톡이 정신없이 울리기 시작한다.
아르헨티나 국립공원 폐쇄!
아르헨티나 정부가 사전 예고도 없이 금일(2020년 3월 14일)부터 모든 국립공원을 폐쇄한다는 발표를 했다는 소식이다. 3월 14일! 오늘 아침 칠레에서 아르헨티나로 오는 버스 안에서 남편은 아이에게 화이트데이라며 사탕 선물을 했었다. 
상황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로스 글라시아레스(모레노 빙하), 피츠로이, 이구아수, 티에라 델 푸에고 등등 아르헨티나 전 지역의 국립공원 앞에서 여행자들은 아연실색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ㆍ글 강주혜
ㆍ사진 김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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