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끝. 공기가 푸르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오전 4시에 출발한 비행기는 아침 7시 30분에 우리를 세상의 끝으로 데려다 놓는다. 어제까지 입고 있던 반팔의 티셔츠 위에 두꺼운 패딩 점퍼를 껴입는다. 고작 3시간 30분을 날아와 공간 이동을 했을 뿐인데 여름 티셔츠 위에 껴입은 겨울 점퍼처럼 한 계절을 건너와 버렸다. 공항 밖을 나오니 음이 소거된 도시마냥 조용하다. 공기에도 색이 있구나, 푸르다! 남극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라는 생각 때문인지 코끝에 스치는 바람이 싸하다. ‘Fin del mundo, Ushuaia!’ 이곳은 세상의 끝, 우수아이아다
공간도 시간도 낯설다. ‘초겨울 새벽’ 느낌의 필터가 끼워진 렌즈를 통해 보면 이런 느낌일까. 겨울로의 순간이동은 따뜻한 국물이 생각나게 한다. 수제비를 끓여 먹자며 밀가루를 사러 나선다. 동네 구멍가게에는 찾는 물건이 없어 더 큰 마트를 찾아가는 길에 만나는 풍경이 예쁘다. 가보지는 않았지만, 북유럽의 작은 마을 같다. 띄엄띄엄 있는 유럽풍의 집들, 파스텔 색조의 작은 꽃들이 피어있는 정원, 한적한 거리, 하늘은 푸른데 흐린 듯한 날씨. 여태껏 경험한 남미와는 다른 분위기 탓인지 꽉 조여 있던 나사가 느슨해진다.
산책 나섰다가 길을 잃기도
휴대폰도 없이 겨울 점퍼를 걸치고 맨발에 슬리퍼를 끌고 나선 길이 한 시간이 넘어가고 있다. 예상보다 큰 마트에 다양한 물건을 보자 계획에도 없던 쇼핑 욕구가 생긴다. 욕심의 무게만큼 무거운 짐을 나누어 들고 마트를 나서자마자 민주와 나는 잠시 당황한다. 제법 가파른 오르막이 우리 앞에 버티고 있다. 동네 구경 삼아 나선 길이 편했던 것은 시원한 내리막길과 가벼운 신발에 맨몸이었기 때문이었구나! 밀가루, 감자, 양파, 마늘, 고기, 계란, 우유, 식빵을 담은 봉지는 무겁고, 얇은 바닥에 가벼웠던 신발은 길 위의 크고 작은 충격들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맑은 하늘의 흐린 날씨는 이제 비까지 흩날린다. 짧다고 생각했던 길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늘어나더니 미로처럼 얽혀 버린다. 민주와 난 길을 잃은 것이다.
초행길을 산책하듯 걸은 탓에 되짚어갈 길을 숙지하지 않았다. 한적한 길의 그만그만한 집들은 길잡이 역할을 하지 못하고 그 집이 그 집이고, 그 길이 그 길이 되고 있다. 전화기가 없으니, 집에 있는 남편에게 도움을 청하지도 못하고, 주소를 기억하지 못하니 택시를 탈 수도 없다. 갈림길에서 오작동한 나의 방향감각은 민주와 의견 충돌을 일으킨다. 민주가 인도하는 길을 따라가다 보니 우리 동네 구멍가게가 보인다. 내가 틀렸고, 민주가 맞았다.
100년 넘은 카페, 박물관 같아
우수아이아 시내를 둘러보자며 길을 나선다. 시내로 향하는 내리막길 끝에 바다가 보인다. 비글해협이다. 길이 끝나는 곳에 바다가 있고, 그곳이 우수아이아 번화가다. 사람이 많긴 하지만 복잡하지는 않다. 길이 복잡하지 않아 이제 길을 잃지는 않을 것 같다.
1906년에 문을 연 카페가 있다기에 두 번 생각하지 않고 찾아간다. ‘Ramos Generales El Almacén’ 입구에 ‘Museo’(박물관)라는 간판이 나란히 붙어 있다. 100년이라는 시간의 흔적을 볼 수 있으니, 박물관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시간의 힘을 견뎌낸 것들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 세련되지 않으나 멋스럽다. 조잡하나 촌스럽지 않고, 조화롭지 못한 것들이 모여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어떤 모습으로 있어도 당당하다.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만 않는다면 백 년이 아니라 만 년도 너끈히 견딜 수 있으리라.
거친 바다의 따뜻한 위로
입을 수 있는 옷은 가능한 한 다 껴입는다. 버프로 얼굴의 반을 가리고 털모자를 쓰고 장갑을 낀다. 우리가 탄 크루즈가 비글해협을 가로질러 세상 끝 등대를 향해 가고 있다.
“바다에 하얀 꽃이 피는 것을 보니 파도가 거칠구나.” 오래전 남해 다랭이 마을에서 바다를 보며 내뱉은 오빠의 말은 한 편의 시가 되어 내 속에 각인되었다. 선미에서 사진을 찍겠다며 나간 남편과 아이는 바람에 호되게 당한 채 들어온다. 바다에는 하얀 꽃이 피고 있다. 오른쪽 창밖은 금방이라도 소나기가 쏟아질 듯 검은 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왼쪽 창밖은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펼쳐져 있다. 지킬박사와 하이드의 얼굴을 한 하늘이 신기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다. “펭귄이다!” 멀리 보이는 바위섬에 엄청난 수의 펭귄이 보인다. 남극이 가까운 게 사실이었어! 배가 바위섬으로 바짝 다가간다. 펭귄이 아니다. 가마우지다. 날개를 펼치지 않았다면 펭귄인 줄 알고 지나쳤을 정도로 똑같다. 가마우지 섬을 지나니 한 무리의 바다사자들이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바닷새들은 바다 위를 달리며 박차를 가해 하늘로 날아오른다. 물고기가 튀어 오르더니, 운 좋게도 고래가 튀어 오른다. 다큐멘터리에서 보던 것처럼 튀어 오른 고래는 포물선을 그리며 바닷속으로 들어간다. “엄마, 난 사람이 키우지 않는 저런 동물을 원해~” 날 것 그대로의 자연에 민주가 흥분한다.
세상 끝 등대가 가까워지자 바다에는 하얀 꽃들이 더 자주 피었다 지고 있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 ‘해피투게더’에서 슬픈 기억을 다 내려놓고 온다는 그 등대다. 장첸이 아휘의 슬픔을 저곳에 내려놓았나? 카세트테이프를 누른 채 끅끅 울음을 삼키던 아휘의 모습만 생각난다. 어쩌면 아휘의 슬픔은 이곳의 바람에 갇혀, 이곳에 오는 이들을 통해 자신의 슬픈 기억을 되살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멀어져 가는 등대가 아련하다. 새삼 바다가 궁금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존재만으로 우리를 위로하는 자연의 힘이 느껴진다. 민주와 난 자연의 위로를 받으며 서로를 깊이 껴안는다. 세상 끝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옷깃을 여미면서도 마음은 따듯해지는 기분 좋은 하루다.
펭귄의 도시 우수아이아
우수아이아에 오면 해야 할 숙제가 있다. 킹크랩 먹기. 여행 중 맛집에서 뭔가를 먹는 것이 숙제처럼 생각될 때가 있다. 가령 쿠바에서 랍스터 먹기, 멕시코에서 타코 먹기, 아르헨티나에서 아사도 즐기기, 브라질에서 슈하스코 즐기기 등등. 한국에 여행 온 외국인이 불고기와 비빔밥, 김치를 먹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 생각하면 그렇게 어려운 숙제는 아니다. 저렴한 가격에 킹크랩을 즐길 기회이니, 이 숙제는 미루지 않는다. 오늘 저녁은 킹크랩이다.
우수아이아는 사람을 걷게 만드는 도시다. 변화무쌍한 날씨마저 우수아이아의 매력으로 다가온다. 집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천천히 걸어 내려오면 브레베(크림이 들어간 커피의 한 종류)가 맛있는 카페가 나온다. 카페에서 차 한 잔을 즐기고, 바다를 따라 난 길을 걷는다. USHUAIA 사인 조형물까지 제법 먼 거리도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아르헨티나 지도를 형상화한 조형물을 보며, 아르헨티나 국기를 우수아이아의 하늘을 보고 만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르헨티나 지도를 파낸 허공의 빈자리에 연한 푸른빛과 하얀 구름이 보인다. 아르헨티나 국기와 같은 모습이다.
우수아이아는 펭귄의 고향 같다. 기념품 가게에 거짓말 조금 보태 80%는 펭귄이다. 옷가게의 마네킹도 펭귄이다. 펭귄 형상의 쿠키를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한 민주는 펭귄의 입에 살짝 입맞춤한 뒤, 펭귄의 머리를 한입에 깨물어 버린다. 붕어빵을 머리부터 먹는지 꼬리부터 먹는지는 재미 삼아 이야기했는데, 펭귄의 머리를 통째로 입에 넣는 아이를 보며, ‘여행이 많이 힘이 드는가?’란 생각을 하게 된다. 우수아이아에서 펭귄을 보는 것도 숙제 중 하나이나, 펭귄을 보기에는 약간 늦었다기에 펭귄 숙제는 칠레의 막달레나 섬에서 하기로 한다.
세상의 끝에서 쓴 엽서
‘끝’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이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우수아이아다. 이곳의 건널목은 세상 끝 건널목이고, 이곳의 마트는 세상 끝 마트이다. 우리는 세상 끝에 있는 찻집에서 차를 마시고, 세상 끝에 있는 화장품 가게에서 스킨과 로션을 산다. 오늘은 세상 끝 우체국에서 엽서를 쓴다. 세상 끝 우체국의 소인이 찍힌 엽서가 받는 이에게 인상적인 선물이 될 것 같기에. 민주는, 한 사람에게만 엽서를 써야 한다고 하니 인도에 사는 사촌 언니에게 쓰겠다고 한다. 나는, 새벽에 길을 나선 나의 아이에게 엽서를 쓴다.
한국이 그리운 민주에게.
민주야 너무 이른 새벽길을 나서게 해서 미안해.
새벽바람이 생각보다 차고, 길은 어두워 네가 많이 힘든 것 알아.
어렵고 힘든 길을 엄마와 함께 걸어주어 고마워.
네가 조금 더 큰 뒤에 이 엽서를 보며, 다시 세상 학교가 그리워지기를 소망한다.
그때가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네가 마음을 먹는 그 순간에 망설이지 말고 길을 나서길.
2020. 3. 10. 세상 끝 마을에서 오후에 길을 나선 엄마가
나의 아이가 세상 학교가 그리워 다시 길을 나설 때가 너무 늦은 오후가 아니기를 바라본다.
ㆍ글 강주혜
ㆍ사진 김정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