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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50에 배낭 메고 떠난 가족 여행 20화

여행 최대의 실수로 기억될 멕시코 산 미겔 데 아옌데(San Miguel de Allende)

  • Editor. 월간경남
  • 2022년 02월호

땅 밑 물길로 차가 달려

터널이다. 한 줄의 직선으로 쭉 뻗은 길이 아니다. 여러 갈래의 터널이 나온다. 동굴 같다. 이상한 터널이다. 이상한 터널을 빠져나오니, 중세 유럽풍의 집들이 예쁜 작은 마을이 나온다. 과나후아토다. 과나후아토를 걸어 다니다 보니 곳곳에 지하로 이어진 길이 보인다. 그 길에서 차도 나오고, 사람도 나온다. 마치 과나후아토 아래에 개미집처럼 여러 갈래 길들이 있는 건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궁금하다.

과나후아토의 지하차도 진입로

“아, 지하차도요? 그게 원래는 지하 수도였어요. 홍수와 산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만든 지하 수도였는데, 지금은 지하차도로 사용되고 있는 겁니다.”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의 설명이다. 물이 범람해 도시가 잠기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든 땅 밑의 물길로 이제는 차들이 다닌다. 지하차도가 없으면, 좁고 비좁은 구시가지는 차들로 꽉 막혔을지도 모른다.
과나후아토에는 멕시코 마피아들이 오지 않는다고 한다. 오게 되더라도 사고를 치지 않는다고 한다. 과나후아토로 통하는 길이 하나뿐이라, 그 길을 막아버리면, 도망갈 곳이 없어 말 그대로 독 안에 든 쥐가 되니까. 도시 아래의 수갈래 길들이 무색하게 이곳으로 오는 길이 하나뿐이라니, 과나후아토와 길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동굴처럼 보이던 이상한 터널의 정체를 알고 나니, 지하세계에 여러 갈래의 길들이 보인다. 갈래 길에 세워진 이정표로 도로 위의 위치를 알 수 있다. 마치 지하에 다른 세상이 하나 더 있는 느낌이다.

 

고딕 양식의 우뚝 선 성당은 산 미겔 어디에서 봐도 눈에 띈다
고딕 양식의 우뚝 선 성당은 산 미겔 어디에서 봐도 눈에 띈다


산미겔에서의 해프닝

중세로 통하는 이상한 터널을 빠져나오니 쭉 뻗은 도로와 건물들이 익숙한 현대의 풍경이다. 
멕시코시티에서 과나후아토로 여행을 간다는 말에 멕시코시티 숙소에서 만난 여행자들이 하나같이 ‘산 미겔 데 아옌데(이하, 산미겔)’를 적극 추천한다. 해질 무렵 풍경이 너무나 아름답다며, 산미겔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호텔 루프 탑에서 차 한 잔 하면서 풍경을 감상하라는 구체적인 팁까지 제공한다. 
산미겔에 도착한 우리는 여행 후 처음으로 로컬버스를 타고 구시가지로 간다. 시내버스에서 현지인들과 같이 흔들리며 가다서기를 반복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산미겔 구시가지에 도착해 확인하니 우리가 예약한 숙소가 구시가지에서 백 킬로가 넘게 떨어진 곳이다. 취소 메일을 보내고 다시 숙소를 검색한다. 낯선 도시에서 정오가 넘어가는 시간인데 숙소가 없으니 불안하다. 익숙하지 않은 영어와 스페인어에 ‘페소’라는 화폐단위도 생소하다. 99,000원짜리 방이 보인다. 결제 버튼을 누르니 폰으로 결제액이 전송된다.

 

로우앵글로 바라본 대천사 산미겔 교구 성당
소깔로 광장에서 바라본 대천사 산 미겔 교구 성당

 

실수로 방값 990,000원 결제

“오 마이 갓!” 99,000원이 아니라 990,000원이다. 
사색이 된 우리는 우버를 타고 숙소로 간다. 우버가 도착하자, 호텔 벨 보이가 미소를 지으며 차 문을 열어주고 짐을 들어준다!(5성급 호텔의 클래스다.)
호텔 사무실 직원은 친절한 표정으로 “이미 ‘아고다’에서 결제승인 영수증이 도착했다. 사정은 알겠지만 어쩔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결제한 지 20분이 채 지나지 않은 시간이다. 한국 아고다는 새벽시간이라 ARS로 연결된다. 비상전화를 누르니, 본사의 외국인이 상담전화를 받는다. 영어로 나의 상황을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머릿속이 하얗다.
‘자, 침착하자. 새벽이라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어. 예의를 차리기에 100만 원이란 돈이 너무 크다.’ 나의 여행 멘토에게 전화를 한다. 전화를 받은 동생에게 너의 능숙한 영어로 대신 설명을 해 줄 것을 부탁하자, 동생은 망설이듯, 그러나 진지하게 이야기한다.
“누나, 내가 대신 통화를 할 수는 있어요. 하지만, 이렇게 되면, 여행을 하면서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절 찾게 될 거에요. 누나 정도면 충분히 할 수 있어요. 하고 싶은 이야기를 천천히 해보세요.”
오후 1시가 넘어가는 시간이다. 점심도 먹지 못한 아이는 배고픔보다는 걱정과 무서움이 뒤섞인 표정으로 앉아 있다. 100만 원이라는 액수에 놀란 나는 걱정과 불안을 그대로 드러냈다. 어른이 불안하면 아이도 불안한데. 뒤늦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아이를 보며 말한다.
“민주야, 아빠랑 가서 점심 먹고 와. 엄마가 해결할게. 해결 안 되면, 우리 100만 원짜리 방에서 한 번 자보는 거지. 이것도 여행이야.”
“엄마, 우리 100만 원 써 버리면 돈이 없어 거지되는 거 아니야? 이제 여행 못하는 거야?”
10살 아이에게 100만 원이란 돈은 자기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큰 돈일지도 모른다. 어른의 놀람과 호들갑스런 걱정을 아이는 직격탄으로 받고 지금 무서움에 떨고 있다.
“I want to cancel my booking. I am sorry, I made a mistake.” 
“네가 무슨 말 하는지 알겠다. 사정도 충분히 이해한다. 우리도 취소를 해주고 싶다. 하지만 아고다에서 이미 결제승인 영수증을 보내서 어쩔 수 없다. 도와줄 수 없어서 안타깝다.”
마네킹 같은 미소를 지으며 같은 말을 반복한다.
“누나, 호텔 측에서 자기들은 취소해주고 싶다고 이야기한 게 분명해요? 숙소와 호텔은 핫라인이 연결되어 있어서 호텔에서 진짜 취소를 해 줄 마음이 있으면, 언제든 취소 가능한거에요. 자기들은 해주고 싶으나 어쩔 수 없다고 하는 것은 핑계일 수 있어요.”
동생은 본사에 전화를 해보라고 조언한다. 
아고다 본사에 호텔 측의 말을 전하니, 흔쾌히 호텔과 이야기하겠다며 끊는다. 기다려도 전화가 오지 않는다. 다시 본사에 전화를 한다. “호텔에 계속 전화를 하는데 받지 않는다. 전화를 안 받으니 어쩔 수 없다”라는 답변이다. 대체 무슨 소리하는 거야. 바로 그 전화기 앞에 내가 앉아 있다고! 전화번호를 몇 번 확인한다. 시간이 점점 흐르고 있다. 이미 체크인 시간은 지났다. 나의 핸드폰으로 호텔 관계자를 바꿔 주겠다고 하니, 그건 안 된다고 한다. 하긴, 내 전화기에서 통화하는 사람이 호텔관계자인지 확인할 길이 없으니. 호텔이나 아고다에서는 답답할 게 없는 상황이다. 호텔 직원은 계속 멋쩍은 미소만 지을 뿐,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는다. 
점심을 먹고 시간을 보낼 만큼 보내고 온 아이와 남편은 별 진척이 없는 상황인 걸 알자 포기하잔다. “그만하자. 100만 원 짜리 방이 어떤지 구경이나 한 번 하는 거지.”

 

산 미겔의 석양,  호텔 옥상에서 본 풍경
산 미겔의 석양,  호텔 옥상에서 본 풍경

 

4시간 설득 끝에 문제 해결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아고다에 전화를 한다. 호텔에서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그 때, 나의 상담자가 아닌 다른 직원이 나의 전화를 달라고 하더니, 빠른 영어로 말을 한다. 사무실에서 직급이 제일 높은 듯하다. 그의 책상 위 전화기 벨이 울린다. 잠시 후 웃으며 나에게 오더니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말한다. 내가 포기하지 않고 4시간이 가까운 시간 동안 애쓰는 모습에 그의 마음이 돌아선 것이다. 그는 웃으며 우리의 여행을 응원한다.

 

평범한 건물도 멋진 구름을 만나니 특별하게 보인다


결국 20만 원짜리 방으로 결정

산미겔이 여행자들의 사랑을 받는 도시가 맞나 보다. 빈 방이 없다. 평지 없이 이어진 오르막길을 따라 숙소를 찾아 헤맨다. 루프 탑에서 디너를 먹으며 즐기자던 산미겔의 전경은 고사하고 오늘 저녁 우리 세 가족이 잘 곳조차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거짓말처럼 오르막길 맨 꼭대기 호텔에 딱 방 하나가 남아있다. 조식도 포함되지 않는데 20만 원이 넘는다. 100만 원에 놀란 가슴이라, 20만 원이란 말에 별로 놀라지도 않는다. 우린 셋 다 너무 지쳐 침대에 쓰러진다. 그래도 웃음이 난다. 
더 늦어지면 저녁 식당도 문을 닫는다는 생각에 서둘러 식당을 찾아 헤맨다. 불이 켜진 인도 식당이 보인다. 란과 카레 비슷한 소스와 밥이 나온다. 맛도 모르고 허기만 면하고 나오니 깜깜하다. 하루 종일 긴장한 탓에 온 몸의 긴장이 풀어지며 피로가 몰려온다.

 

눈길을 끄는 모자 장수, 마치 서커스를 보는 듯하다
눈길을 끄는 모자 장수, 마치 서커스를 보는 듯하다

 

갑자기 밀려온 향수병

카카오톡 영상통화벨이 울린다. 아이는 “이모다!”라며 반가운 마음에 전화를 냉큼 받는다. “민주야~ 재밌어?”라는 이모들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아이가 갑자기 대성통곡을 한다. 
“엉엉~ 나 집에 가고 싶어~ 엉엉”
터져버린 울음은 멈추지 않고 점점 커진다. “이모도 보고 싶어. 친구도 보고 싶어. 학교도 가고 싶어. 엉엉” 1년이라는 여행이 이런 건 줄 몰랐다며 아이는 꺼이꺼이 울며 말한다. 이제 그만 집에 가자고 떼를 쓴다. 몸과 마음이 완전히 탈진된 상태에서 영상통화로 이모와 우리 집 거실을 보는 순간 실체를 드러내지 않던 향수병이 폭발을 해버린 것이다.
10살 아이 입장에서는 100만 원이란 돈은 자신이 생각지도 못한 엄청난 액수이고, 1년이라는 시간은 며칠 신나게 놀면 지나가는 짧은 시간이었나 보다. 오늘 하루 하드코어다.
불을 켜고 잠이 들었나? 침대에 누워 천정을 보니 불이 환하다. 이상하다. 천장의 불은 환한데 방은 어둡다. 한참을 보니, 천장에 구멍이 뚫려 있다. 뚫어진 구멍 사이로 하늘이 보인다. 천장의 구멍을 뚫어지게 본다. 어젯밤에 천장에 창이 있는 걸 알았다면, 저 창을 통해 별을 봤을 텐데, 저 창을 통해 들어온 달빛을 봤다면 민주가 조금 위로받았을까?

 

여행자들 위로 우뚝 솟아있는 거대 인형들
여행자들 위로 우뚝 솟아있는 거대 인형들
공원에서 만난 멕시코 청년들이 민주에게 장난감 사용법을 전수해주고 있다
공원에서 만난 멕시코 청년들이 민주에게 장난감 사용법을 전수해주고 있다

 

장난감 박물관에는 1000개 넘는 전통 멕시코 장난감 전시

아이의 표정이 무심하다. 평소답지 않게 아이의 표정을 살피게 된다. 다행히 산미겔에 장난감 박물관이 있다. ‘에스끼나 멕시코 장난감 박물관(La Esquina Mexican Toy Museum)’에는 1000개가 넘는 전통적인 멕시코 장난감이 전시되어 있다. 멕시코 각 지역에서 보내왔다는 다양한 전통의상을 입은 인형들도 보인다. 가족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이 보인다. 파티복을 입은 해골 가족이다. 얼굴 부분이 비어 있어 그 곳에 얼굴을 넣고 사진을 찍으면 된다. 아이를 웃게 하고 싶은 생각에 남편과 나는 아이들 얼굴 넣는 자리에 얼굴을 넣고 사진을 찍는다. 아이가 미소 짓는다. 관람 온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쓸 수 있는 칠판도 있다. 아이는 칠판으로 가더니 분필로 뭔가를 끄적거린다. ‘안녕’이라고 쓴 아이는 글 뒤에 하트 모양을 크게 그린다. ‘안녕’이라는 한글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지려 한다. 아이는 지금 온통 한국 생각뿐이다.

멕시코 사람들의 해골 사랑은 장난감 박물관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멕시코 사람들의 해골 사랑은 장난감 박물관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민주가 칠판에 글을 쓰고 있다.  ‘안녕’
민주가 칠판에 글을 쓰고 있다.  ‘안녕’

산미겔의 거리는 여행자들과 기념품을 파는 현지인들로 활기에 넘친다. 활기찬 거리 덕분인지 아이의 표정이 조금 가벼워보인다. 산미겔 대성당 앞 공원에서 멕시코 전통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민주에게 관심을 보이며 다가온 멕시코의 젊은 여행자들은 우리의 우울함을 다시 여행의 설렘으로 바꾸어 놓는다.

민주의 웃음을 찾아주기 위해 노력 중이다. 장난감 박물관의 포토존
민주의 웃음을 찾아주기 위해 노력 중이다. 장난감 박물관의 포토존
센스 넘치는 문 손잡이. 저 손을 한 번 잡아 볼까
센스 넘치는 문 손잡이. 저 손을 한 번 잡아 볼까

아이의 우울함은 며칠째 계속되는 물갈이 배탈도 한몫을 하고 있다. 흰 죽을 끓여 먹이고 싶지만 여건이 허락하지 않는다. 배탈이 난 아이에게 치명적인 기름진 음식과 밀가루로 만든 음식뿐이다. travel(여행)의 어원이 고통, 고난을 뜻하는 travail에서 왔다고 한다. 아이는 지금 여행의 본질과 맞닥뜨리고 있다. 여행이 비행기를 타고 다니며 호텔에서 편한 잠을 자고, 맛있는 것 먹고 물놀이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여행의 본질을 알게 된 아이에게 여행은 어떤 의미일까. 우리의 여행은 이제 겨우 열흘을 넘겼다.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다는 말을 믿고 싶다. 매도 맞았으니 이제부터 진짜 여행 시작이다.


ㆍ글 강주혜
ㆍ사진 김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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