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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50에 배낭 메고 떠난 가족 여행 21화

겁먹지 마!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아. 멕시코 멕시코시티(Mexico City)

  • Editor. 월간경남
  • 2022년 03월호
황금빛 돔 형 지붕이 멋스러운 멕시코 예술 궁전
황금빛 돔 형 지붕이 멋스러운 멕시코 예술 궁전

 

출발 날짜가 가까워질수록 걱정 심해져

“엄마 여행 가서 우리 중에 누가 죽으면 어떻게 해?”
우리의 첫 여행지가 멕시코라는 말에 예상 밖이라는 표정들이다. 여행이 익숙하지도 않은데 처음부터 힘든 곳을 간다는 반응이다. 걱정하는 마음에 해주는 이야기들로 만나보지도 못한 멕시코 강도에게 이미 영혼이 탈탈 털린 듯하다. 이모부가 목에 걸어 준 비상용 호루라기를 만지며, 내뱉는 아이의 말이 과장으로 들리지 않는다. 
여행을 준비하며 아슬아슬 균형을 잡고 있던 ‘설렘과 걱정’은 출발 날짜가 가까워질수록 걱정에 무게가 실리기 시작하며 감정의 저울이 기울기 시작한다. 이미 구르기 시작한 바퀴는 제 갈 길이 어디인지 알고 있듯 가속이 붙기 시작했고, 그 와중에 나는 감정의 저울이 한 쪽으로 기울지 않도록 스스로를 다독인다.
돈키호테는 편력기사로 첫 발을 디디며, 들판에 나서자 무서운 생각이 엄습하여 이제 막 시작한 계획을 그만둘 뻔했다고 하고, 연암 박지원도 열하일기에 고백하기를 장대한 뜻을 품고 멀리 여행하기를 평생 기다리며 항시 입버릇처럼 ‘반드시 한번은 구경을 해야지’하던 말도 별것 아닌 두 번째로 밀려나며, 되돌아가고 싶은 후회가 들었다고 했다. 
길을 나선 사람의 공통된 마음인가 보다. 일단 출발하고 보자.


‘¡Vamos al Mundo(가자! 세계로)’

인천공항에서 캐나다 밴쿠버를 경유하여 멕시코시티에 도착. 자정이 넘은 시간에 호텔 앞이라며 우리를 내려주고 떠나려는 택시기사를 잡으며, 주소를 한 번 더 확인해 달라고 한다. 호텔이 있을만한 장소가 아니다. 잔뜩 긴장한 채 주위를 보니, 희미한 불빛이 새어나오는 문이 있다. 체크인을 하고 방에 들어서는 순간, 팽팽하게 당기고 있던 활시위를 한순간에 놓아버리듯 침대에 널브러진다.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도의 한숨이 미소로 바뀜에도 온몸의 혈관은 여전히 빵빵한 느낌이다. 눈을 뜨니 정오가 지나지 않은 시간이다. 시차적응도 안되었는데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
공식적인 여행 첫날이다. 호텔 문을 열고 나가자, 새로운 세상이다. 차도와 인도의 경계가 모호한 거리에 다양한 피부 빛깔의 사람들이 왁자지껄대는 소리에 안심이 된다. 새벽에 택시에서 내리는 순간, 휑한 거리가 무서워 숙소를 잘못 구한 것은 아닌지 내심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노점을 펼친 현지인들과 들뜬 표정의 여행자들로 거리는 활기에 넘친다.
멕시코시티 거리를 걷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우리는 흥분하기 시작한다. 눈으로 들어오는 모든 것들이 낯설고, 그 낯섦이 짜릿하다. 소깔로 광장 근처에 숙소를 구한 이유는 멕시코시티 구시가지를 걸어 다니고 싶어서였다. 환전을 하고 인터넷 와이파이를 구입하고, 동네의 가게들 위치를 확인하며 이 도시에서 살아갈 준비를 하나씩 한다.
멕시코시티의 소깔로 광장은 일주일 전에 끝난 ‘죽은 자의 날’ 축제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멕시코시티 거리 전체가 해골을 모티프로 한 조형물과 장식들이 설치되어 있다. ‘죽은 자의 날’ 축제를 즐기지는 못한 아쉬운 마음을 해골 조형물과의 사진으로 달래본다.

‘죽은 자의 날’ 축제를 알리는 깃발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죽은 자의 날’ 축제를 알리는 깃발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코코할머니와 미구엘 사이에서 행복한 아이가호루라기 목걸이를 하고 있다
코코할머니와 미구엘 사이에서 행복한 아이가호루라기 목걸이를 하고 있다
축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축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적들을 경계하며 배낭을 앞으로 메고

아이와 남편은 어제 이른 아침 산책이 좋았다며, 자는 나를 억지로 깨운다. 동네 주민모드로 슬리퍼를 질질 끌며 소깔로 광장까지 걸어간다. 사람이 없으니 길이 보이고 건물이 보인다. 벽돌 한 장 한 장이 예사롭지 않다.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예술이다. 사람이 만들고, 시간이 공을 들인 것들이다. 칠이 벗겨지고 나무가 닳으며 만든 대문의 자연스러운 그러데이션을 넋을 잃고 보게 된다. ‘저건 이제 자연에 가까워….’
돌아오는 길에 어제 찜해둔 와플 집에서 아침을 먹는다. 아침부터 와플도 힘든데, 민주는 마시멜로 토핑까지. 김치 생각이 간절하다.
보이지 않는 적들을 경계하며 배낭을 앞으로 메고,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유괴범으로부터 아이를 지키기 위해 아이의 손을 꽉 잡는다. 사진을 마음껏 찍고 싶은 남편은 카메라를 손에 들고 다니면 적(?)들의 표적이 된다는 말에 앞으로 멘 배낭 속에 카메라를 넣었다 빼기를 반복한다. 핸드폰도 조심해야 한다.
템플 마요르 발굴 현장을 지나자 소깔로 광장이 나온다. 광장 옆에 있는 메트로폴리탄 대성당은 매우 화려하다. 아침 산책 때 꼼꼼히 보았기에 스쳐지나간다.

소깔로 광장 근처의 멕시코시티 메트로폴리탄 대성당이 눈길을 끈다
소깔로 광장 근처의 멕시코시티 메트로폴리탄 대성당이 눈길을 끈다
소깔로 광장 근처 건물의 회랑이 멋지다
소깔로 광장 근처 건물의 회랑이 멋지다
웅장하고 화려한 외관의 성당 앞을 지나는 사람. 유난히 작아 보인다
웅장하고 화려한 외관의 성당 앞을 지나는 사람. 유난히 작아 보인다

 

멕시코 예술 궁전 찾아가는 길

우리는 지금 멕시코 예술 궁전(Palacio de Bellas Artes)을 찾아가는 길이다. 다행히 멕시코시티 시내를 관통하여 가기에 가는 길이 즐겁다. 버스킹을 하는 사람들, 해골과 뱀파이어 코스프레를 한 사람들, 영화 코코 속 할머니와 미구엘, 토이스토리의 버즈 탈을 쓴 사람들이 사진 찍기를 권하며 호객행위를 하고 있다. 여행자와 현지인들이 자연스럽게 섞여 흐르는 거리는 우리에게 그 어떤 풍경보다 이국적으로 다가온다. 그들도 흔히 볼 수 없는 동양인 가족이 신기한지, 아이에게 함께 사진을 찍자는 이들도 있다. 아이는 미구엘과 코코 할머니, 토이스토리의 버즈와 사진을 찍고, 각각의 인형들에게 20페소(멕시코 화폐단위) 씩을 지불한다. 사진을 다 찍었는데도 아이의 입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20페소가 전혀 아깝지 않다. 유난히 사람이 많고, 가게 밖까지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서 있는 곳을 보니, 바로 80년 된 츄러스 맛집이다. 50평생 먹어본 츄러스 중 단연 1위다. 숙소에서 꽤 떨어진 멕시코 예술 궁전은 가는 길의 즐거움으로 멀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80년 전통을 자랑하는 츄러스. 그 크기에 압도당함
80년 전통을 자랑하는 츄러스. 그 크기에 압도당함

 

예술 궁전 돔 지붕 보려면 건너편 카페로 가야

멕시코 예술 궁전을 보기 위해서는 멕시코 예술 궁전에 가면 안 된다. 예술 궁전 건너편 쇼핑몰의 스카이라운지에 있는 카페로 가야한다. 한 눈에 예술 궁전의 전경이 보인다. 이 건물을 위에서 내려다봐야 하는 이유는 황금빛 돔형 지붕 때문이다. 카페는 여행자들로 북적거린다. 예술 궁전이 보이는 창가 자리는 고사하고, 홀에 앉을 자리 찾기도 힘들다. 카페는 커피 맛집이 아니라 view 맛집인 걸로. 예술 궁전은 현재 문화 공연과 미술관을 겸하고 있는 문화 예술의 공간으로 보면 될 듯하다. 입장 시간이 지나고 있어 입장 불가다. 아이가 갑자기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다. 마치 발레 동작을 하듯 팔과 다리를 자유롭게 움직이다. 아이가 길에서 춤을 춘다.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다. 아이의 표정이 편안해 보인다. 아이 속에 꿈틀대던 감정들이 날것 그대로 표출되고 있다. 낯선 장소에서의 익명성이 주는 용기 때문일까? 그것이 무엇이든, 아이를 춤추게 한 멕시코의 공기에게 Gracias!

예술 궁전 건너편 카페에서 궁전을 감상 중인 사람들
예술 궁전 건너편 카페에서 궁전을 감상 중인 사람들

이틀을 잘 다닌다 싶더니, 시차적응을 한 게 아니었다. 아이는 새벽 3시에 일어나 배가 고프다며 힘들어 한다. 비상용 컵라면을 끓여 준다. “민주야, 국물도 다 마실 거가?”라며 묻던 남편은 아이가 남긴 국물을 다 마시고, 난 침을 삼키며 또 잠이 든다.
셋 다 하루 종일 비몽사몽 헤매며 오후 3시까지 자다 깨기를 반복한다. 멕시코에 온 뒤 제대로 된 밥을 먹지 못한 우리는 정신을 차리자며, 우버를 타고 한인식당으로 향한다. 삼겹살에 김치찌개까지 먹었으니, 밥값을 해야 한다며 일찍 잠들지 않기 위해 서로를 다독인다. 외장하드에 담아온 드라마 도깨비를 보며 졸린 눈을 비비다 9시를 넘기지 못하고 잠이 든다.
민주는 어제보다 2시간 늦은 5시에 깨서 또 배고프다며 컵라면을 먹는다. 남편은 오늘도 라면 국물을 마시고, 난 라면 냄새에 고이는 침을 삼키며 뒤척인다.

 

수녀복을 입은 해골도 있으니 보고 가세요
수녀복을 입은 해골도 있으니 보고 가세요
지치고 힘들 때는 앉을 수 있는 자리를 찾아 쉬면 된다
지치고 힘들 때는 앉을 수 있는 자리를 찾아 쉬면 된다

 

바스콘셀로스 도서관의 비주얼은 압도적

오늘은 지하철을 타고 좀 먼 길을 나선다. 목적지는 바스콘셀로스 도서관(Biblioteca Vasconcelos). 영화 인터스텔라의 모티프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일명 인터스텔라 도서관으로 불리는 곳이다.
멕시코시티의 지하철도 ‘지옥철’이라고 불러야할 만큼 사람들이 많다. 어쩌면 오늘 드디어, 멕시코의 소매치기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욱 조심하며 가방을 움켜쥐고, 아이의 손을 꽉 잡는다.

공룡의 뼈로 장식된 바스콘셀로스 도서관 내부. 이 도서관에서 공부가 될까
공룡의 뼈로 장식된 바스콘셀로스 도서관 내부. 이 도서관에서 공부가 될까

지하철에서 내려 도서관으로 가는 길에 예상치도 못한 화려하고 웅장한 느낌의 벽화를 보고 감탄을 하며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는다. 지나가는 하얀 얼굴의 서양 아저씨가 위험하다며 카메라를 가방에 넣으라고 주의를 준다. 멕시코, 아직 긴장을 늦추어서는 안 되는 곳이야!

인터스텔라 도서관이라는 별명과 어울리는 바스콘셀로스 도서관
인터스텔라 도서관이라는 별명과 어울리는 바스콘셀로스 도서관

바스콘셀로스 도서관의 비주얼은 압도적이다. 공교롭게도 압도의 주체는 책이 아니라 책꽂이다.
마치 공중에 떠 있는 듯하다. 인터스텔라라는 별명과 딱 맞아 떨어진다. 도서관에 왔으니 책을 보자며, 그림책 위주로 보는데 잠이 쏟아진다. 국위 선양은 못해도 나라 망신을 시키면 안 된다며 도서관을 나온다.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는 곳이 보이면 기웃거리고, 다리가 아프면 적당한 곳에 걸터앉는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버스킹을 즐기고, 아이가 지치면 아이스크림을 사준다. 현지인과 함께 길에 앉아 타고를 먹고, 한국에서는 즐기지 않던 콜라를 물처럼 마신다. 우리는 지금, 멕시코가 아니라 여행에 적응 중이다.

거리에서 타코를 즐기는 사람들
거리에서 타코를 즐기는 사람들

 

다양성이 주는 다채로움이 강렬

이곳의 풍경들은 대체로 강렬하다.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 잡지에서 튀어 나온듯한 복장의 사람들, 머리카락의 색과 헤어스타일로 자유를 표현하는 사람들, 몸과 표정으로 하는 과장돼 보이는 리액션들, 화려하고 괴기스러운 장신구들, 무엇 하나 같은 것이 없다. 다양성이 주는 다채로움이 강렬하게 다가오지만 불편하지 않다.

산토 도밍고 성당, 미사를 드리는 날은 아니어도 드문드문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산토 도밍고 성당, 미사를 드리는 날은 아니어도 드문드문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옷가게 마네킹도 예술이 되는 거리
옷가게 마네킹도 예술이 되는 거리

자연은 같은 것이 없다. 모두 다르기에 자연스럽고, 자연스럽기에 편하다. 이곳에서는 모두 다르기에 모두 편해 보인다.
아이가 예술 궁전 앞에서 춤을 추며 편안한 미소를 지은 이유를 알 것 같다.
우리보다 자연에 가까운 아이는 본능적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
이곳에서 나도 아이처럼 나를 드러낼 수 있을까. 아이가 이곳에서뿐 아니라, 돌아가야 할 우리의 고향에서도 자유롭게 춤출 수 있기를 소망한다.

 

ㆍ글 강주혜
ㆍ사진 김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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