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대통령궁에 얽힌 비운의 역사
줄이 길다. 줄이 긴만큼 기다림의 시간도 길어지고 있다. 한 명의 아이가 줄에서 빠져나와 건물 벽에 붙여 놓은 바리케이드를 놀이터 삼아 놀기 시작한다. 또 한 명의 아이가 바리케이드 놀이터로 간다. 기다림에 지친 아이들은 하나둘씩 바리케이드로 모인다. 한국에서 온 아이도 예외는 아니다. 아이들은 자신들과 다르게 생긴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바리케이드 사이를 오가며 놀고 있다. 민주는 모자를 눌러 쓰며 철봉에 매달리듯 바리케이드에 매달린다.
멕시코대통령궁(Palacio Nacional) 입장은 생각만큼 까다롭지 않다. 여권을 맡긴 뒤 간단한 짐 검사를 한 후 입장이 가능하며 별도의 입장료는 없다. 궁에 들어가자 정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키 큰 선인장이 눈길을 끈다. ‘여긴 멕시코야.’
궁 안으로 들어서자 아치형의 통로를 통해 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빛을 따라 빛 속으로 들어서니, 바로크 양식의 3층 아치형 회랑이 네모꼴 중정을 둘러싸고 있다. 중정 가운데 3단의 분수가 있고, 분수 정상에는 페가수스 조각상이 있다. 페가수스가 품고 있는 은유는 무엇일까. 성질이 난폭한 페가수스를 길들인 벨레로폰의 상징일까, 자신의 허영심 때문에 결국엔 페가수스에서 떨어진 벨레로폰의 상징일까?
멕시코대통령궁은 스페인 침략 전에는 아즈텍 왕의 목테수마 2세(Mectezuma Ⅱ)가 사용했던 궁전이 있던 곳이다. 스페인 침략자들이 아즈텍 왕의 궁전을 파괴한 뒤 궁전의 잔해에서 나온 돌로 그 자리에 스페인 총독의 집을 지었다고 한다. 독립 이후 대통령 사저로 쓰이다가 20세기에 들어서 정부청사로 쓰였으며, 현재 대통령 사저로 쓰이고 있다. 일제강점기의 아픈 역사를 가진 민족으로서 멕시코대통령궁에 얽힌 비운의 역사가 그냥 지나쳐지지 않는다. 그 어떤 이유를 들이대도 나의 감정 이입은 아즈텍인디오에게 기울 수밖에 없다.
왕궁 벽 따라 그려진 멕시코 고대 문명 소개한 벽화
여행자들이 대통령궁에 오는 이유 중 하나는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의 벽화를 보기 위해서다. 왕궁에서 2층으로 오르는 계단 벽의 세 개 면에 그려진 <멕시코의 역사(La Historia de Mexico)>는 멕시코의 혁명 정신을 표현하는 대표작으로 꼽힌다. 오른편에는 멕시코의 고대 문명이, 중앙에는 스페인 정복에서부터 현재, 왼편에는 사회주의 노선을 표방하는 멕시코의 미래가 그려져 있다.
일반적으로 시선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흐르는데, 벽화의 시간 흐름은 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그려졌을까?
왕궁의 2층 벽을 따라 멕시코의 고대 문명을 소개한 벽화가 그려져 있다. 마치 아즈텍 문명의 역사책을 보는 듯하다. 문맹률이 높은 멕시코인들의 의식 개혁을 위해 ‘벽화’ 운동을 시작했다는데, 정말 현명한 선택이었지 싶다. 스페인어를 모르는 우리는 왕궁의 벽화만 보고도 멕시코의 역사를 이야기하며 그들의 아픔도 함께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아이와 벽화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한 뿌리에 달린 감자처럼 우리의 역사도 같이 따라 올라온다.
“BTS?”
BTS의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호의적인 미소를 보내는 멕시코의 ‘Army(BTS 팬클럽 이름)’들. 같이 사진을 찍고 싶다는 말에 아이는 수줍은 미소로 답한다. 자신에게 보내는 이방인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모자를 눌러쓰던 아이는 그 시선이 호의였음을 깨닫기 시작 한다.
인디오들이 가득 메운 소깔로 광장
소깔로 광장이 떠들썩하다. 맥주와 레몬에이드로 갈증을 달래던 남편과 아이가 소란스런 소리에 카페 밖으로 튀어 나간다. 전통의상과 깃털로 된 머리 장식을 한 인디오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 하얀 연기가 신비스런 분위기를 더하고 있다.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소깔로 광장으로 향한다. 광장 한 쪽에 하얀 연기가 피어나고, 주문 소리와 종소리가 간간이 들린다. 눈을 감고 손을 앞으로 내밀며 서 있는 사람의 몸을 향해 향로에서 피어오르는 하얀 연기를 입으로 불고 나뭇잎으로 몸을 쓰다듬는 늙은 인디오. 몸과 영혼을 정화시키는 종교의식 같다. 민주가 자기도 하겠다고 나선다. 긴장한 듯 꼭 감은 눈과 놀란 말꼬리처럼 뻗친 아이의 꽁지머리를 보며 약간 찜찜하다. 종교의식이라는 생각 때문인 듯하다. 하얀 연기와 나뭇잎으로 아이의 몸과 영혼을 정화한 늙은 인디오는 아이의 정수리에 한 손을 얹고 다른 손으로 머리 뒤쪽을 마사지 하듯 비비며 주문을 외고, 이름을 알 수 없는 나뭇잎 한 움큼을 아이의 손바닥에 얹은 뒤 아이의 손을 같이 잡고 주문을 외며 비빈다. 아이는 계속 나뭇잎을 비비고, 늙은 인디오는 아이의 볼을 감싸며 아이에게 무언가 이야기를 하더니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한다. 그러더니 우리를 향해 손바닥을 내민다.
중남미서 가장 중요한 가톨릭 성지 과달루페 성당
어느 도시든 시티투어 버스를 타는 재미는 쏠쏠하다. 버스를 타고 도시를 둘러보다 마음에 드는 장소에 내리면 된다. 하지만 오늘은 과달루페 성당(Basilica de Santa Maria de Guadalupe)을 목적지로 두고 시티투어 버스를 탄다. 우리가 탈 뚜리부스(Turibus)는 총 4개의 노선이 있는데, 우리는 네 번째 노선인 바실리카(Basilica)를 타야 한다.
시티투어 버스에 오르자 과테말라에서 온 학생들이 같이 사진을 찍자며 말을 걸어온다. 우리가 한국 사람인 걸 어찌 알고 한글 번역기를 돌려 보여준다. “너희 나라 동전 내 놔!” 당황한 표정에 놀랐는지, 자기 나라 동전을 내보이며 기념으로 바꾸자고 한다. 안타깝게 가진 한국 돈이 없어 거래 불발이다. ‘10원짜리 동전에 다보탑이 있는데, 몇 개 챙겨오는 건데….’
과달루페 성당은 성당 마당을 가득 메운 인디오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인디오들의 행사가 궁금하지만 할 일부터 하자며 성당으로 간다. 과달루페 성당은 세계에서는 로마의 바티칸 성당 다음으로, 중남미에서는 가장 중요한 가톨릭 성지다. 기존의 성당이 기울기 시작하면서 옆에 새 성당을 지었다고 한다. 구 성당 안은 성당 밖의 어수선함과는 다른 세계다. 성당 안의 어둠을 뚫고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줄기가 성당을 더욱 성스러운 장소로 만들고 있다. 가톨릭 신자가 아닌 탓인지 검은 얼굴의 성모마리아가 감동적이지는 않다. 과달루페 성모는 원주민 종교와 성모 마리아가 합쳐져 탄생한 멕시코의 상징이다. ‘저는 지금 성당 마당의 인디오들이 더 궁금해요. 미안합니다. 성모 마리아님’
새 성당엔 미사를 드리는 사람들로 앉을 자리는 고사하고 서서 볼 자리도 없다. 오늘이 일요일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가톨릭신자와 여행자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어도 에스파뇰로 부르는 성가와 신부님의 기도 소리는 마음을 편하게 한다. 가톨릭 신자는 아니지만 신부님의 기도에 나의 기도를 살짝 얹어 본다. ‘낯선 곳으로 우리를 데려다 놓은 신의 뜻이 무엇인지 모르나, 무사히 여행을 마치게 해 주세요.’
성당 마당에는 여행자보다 인디오가 더 많은 것 같다. 각자의 부족을 상징하는 문양과 장신구를 착용한 인디오들은 여행자들의 사진 요구에도 흔쾌히 포즈를 취해 준다. 사진을 찍은 뒤 돈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가족 단위의 인디오들이 많이 보인다. 어린이 인디오, 청소년 인디오들을 보니, 저 아이들은 자신의 뿌리에 대한 자부심이 어느 정도일까 궁금해진다. 궁금함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나의 어림짐작이 천박해 갑자기 부끄럽다.
소깔로 광장에서 본 하얀 연기가 곳곳에서 피어오르고, 소라 뿔 고동을 부는 소리가 들린다.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하나님의 미사가 성당 안에서 열리고 있는데, 성당 밖의 분위기는 지금 당장 인디오들이 우상숭배 의식을 올릴 분위기다.
라틴 아메리카의 가톨릭은 토착 신앙과 접목되어 가톨릭을 받아들이지만 자신들 전통 신앙을 버리지는 않는 형태라는 말을 들은 적은 있으나, 지금 눈앞의 인디오들의 모습에서는 가톨릭 신앙의 모습을 찾기 어렵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는 인디오의 행진소리
저건 뭐지? 어디서 나타났는지,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상 뒤로 인디오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혼란스럽다. 종교란 대체 무엇일까. 누구를 위한 종교인가. 보지 않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풍경에 넋이 빠졌나 보다. 하늘은 맑은데 멀리서 천둥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일정한 박자로 울리는 소리의 정체는 뭐지? 북소리처럼 들리나 북소리는 아니다. 무슨 소리인지 알 수는 없으나 일정한 박자에 나의 심장도 동기화되어 같은 박자로 뛰기 시작한다. 소리가 점점 커진다.
한 무리의 인디오들이 도로 한 차선을 차지하고 행진을 하고 있다. 인디오들의 발목에 찬 각반이 눈에 띈다. 나무로 만든 것 같은데, 바깥부분은 요령 모양의 장식물이 달려 있다. 걸을 때마다 각반끼리 부딪히는지, 요령이 울리는지 각반에서 소리가 난다.
인디오들이 과달루페 성당으로 모이는 이유가 궁금하지만, 어느새 하늘이 어두워지고 있다. 이제는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우리에게 멕시코는 아직 위험하니까.
시티투어 버스를 타고 멕시코시티 야경 투어까지 하게 되다니, 늦는 것이 다 나쁜 것은 아니구나.
도시의 야경을 보는데 인디오들의 행진 소리가 계속 들리는 것 같다.
스페인 침략군은 인디오들의 저 행진 소리를 들었을까? 위압적인 행진 소리를 들었다면 분명 도망치고 싶었을 텐데. 스페인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는 후퇴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배를 모두 태워버렸다고 한다. 어쩌면 코르테스는 저 행진소리에 겁먹은 자신을 들키지 않기 위해 배수의 진을 쳤을지도 모르겠다.
인디오의 행진소리에 동기화된 나의 심장은 아직도 그들의 박자에 맞추어 뛰고 있다.
‘내가 진짜 아메리카 대륙에 왔구나!’ 가슴이 두근거린다. 인디오들의 행진소리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하던 일을 멈추고 그 소리를 쫓아 시선이 따라가게 한다. 인디오들의 행진소리가 우리는 과거의 산물이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는 현재를 살고 있고, 또 미래로 나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말한다. 검은 얼굴의 성모 마리아는 하얀 얼굴인 예수의 어머니가 아니라, 검은 얼굴인 인디오들의 어머니라고. 우리는 그들의 신이 아니라, 우리의 신을 믿는다고.
오늘밤, 인디오들의 행진소리에 잠을 설칠지도 모르겠다.
ㆍ글 강주혜
ㆍ사진 김정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