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나이 50에 배낭 메고 떠난 가족 여행 19화

코코의 고향 멕시코 과나후아토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다.

  • Editor. 월간경남
  • 2022년 01월호
어둠이 내리기 전의 불빛이 아련하다
어둠이 내리기 전의 불빛이 아련하다

“불빛이 창원 같아”

“엄마, 저 멀리 불빛이 창원 같아 ….”
태양이 사라졌음에도 아직 어둡지는 않다. 구름 가장자리로 태양이 남기고 간 빛들이 물들기 시작하자, 도시의 집들도 하나씩 불이 켜진다. 창원 생각이 난다는 아이의 얼굴이 노을빛으로 젖어드는가 싶더니, 이내 어두워진다. 
“친구들 보고 싶어 ….” 
어둠도 빛도 힘이 들어가지 않은 시간이다. 이 시간 즈음의 불빛은 어둠을 밝히기 위함이 아니다. 이 시간 즈음의 불빛은 잊고 지내다 보니 잃어버린 기억을 비춘다. 추위에 떨며 야경을 감상한 탓인지, 친구가 그리운 탓인지 아이는 물기 머금은 듯 콧소리가 난다. 아이의 목소리가 젖어있다.
과나후아토의 야경은 진부한 표현이긴 하지만, 보석을 뿌려놓은 듯 아름답다. 멕시코시티에서 꼬박 5시간을 달려 도착한 후 석양을 놓치지 않으려고 짐만 던져놓고 서둘러 나온 이유다.  해발 2,000미터가 넘는 곳이라, 어두워지면서 급격히 기온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이제 저 불빛 속으로 들어갈 시간이다.

과나후아토는 멕시코임을 말하는 골목길
과나후아토는 멕시코임을 말하는 골목길
과나후아토는 멕시코임을 말하는 골목길
과나후아토는 멕시코임을 말하는 골목길


생기 넘치는 과나후아토

과나후아토의 밤거리가 생기에 넘친다. 멕시코시티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관광도시답게 여행자들도 많지만, 유난히 젊은 친구들이 많이 보인다. 과나후아토 대학이 유명하다더니, 도시 전체가 대학 캠퍼스 분위기다. 
어젯밤 추웠던 기억이 생생해 오늘은 나서면서부터 두꺼운 외투를 챙긴다. 우리가 묵은 숙소부터 유럽풍의 작은 집이라, 문을 열고 나오니 그 곳이 동화 속 풍경이다. 낡은 벽, 문, 골목, 지붕, 화분은 물론이고 그림자까지 예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같은 모양, 같은 색의 집이 없다. 사진기 셔터를 누르기 바쁘다.
돈키호테 동상이 보인다. 16세기 초 스페인에 의해 건설된 식민 도시라는 과나후아토에서는 해마다 세르반테스 축제가 열리고 있으며, 돈키호테 박물관까지 갖추고 있다. 일제강점기라는 아픈 역사를 가진 민족인 탓인지, 이런 부분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문화를 문화로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함께 떠오르긴 하지만, 쉽게 답을 내릴 수 없는 부분이다. 그래도 돈키호테이니, 반가워하며 기분 좋게 사진 한 컷!

과나후아토 전경을 보고 있는 여행자들
과나후아토 전경을 보고 있는 여행자들
과나후아토의 상징 개구리. 과나후아토라는 어원이 원주민어 '개구리의 언덕'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과나후아토의 상징 개구리. 과나후아토라는 어원이 원주민어 '개구리의 언덕'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애니메이션 <코코>의 배경지로 유명
과나후아토는 애니메이션 <코코>의 배경지로 유명하다. 우리는 지금 <코코>의 모티브가 된 공동묘지를 찾아가는 길이다. 공동묘지를 찾아가는 길에 과나후아토의 주요 관광지를 관통하고 있다. 후아레스 극장, 과나후아토 대학, 성모성당 등 눈에 띄는 관광지와 시내가 한데 어우러져 있어 도시 전체가 축제분위기다.
후아레스 극장 근처를 지나는데 한 무리의 여학생들이 다가오더니 인터뷰 요청을 한다. 학교 과제물을 제출하기 위한 인터뷰인가보다. 아이에게 멕시코와 과나후아토 여행에 대한 질문을 다양하게 한다. 아이는 서툰 영어로 알아들은 만큼 답을 한다. 여학생들도 역할 분담을 했는지, 비디오를 찍는 학생, 녹음하는 학생도 있다. 방송국 인터뷰는 아니지만, 아이에게는 이벤트 같은 일이라 설렌 표정이 역력하다. 색다른 경험에 신이 난 아이는 조금 전 지친 표정이 사라졌다.
북적거리는 시내를 지나고 조금 한적한 길로 들어선다. 여전히 눈에 보이는 집들과 가게들은 우리의 눈길을 끈다. 시내를 벗어나자 과나후아토의 일반 서민들이 살 것 같은 동네가 나온다. 미겔(영화 <코코>의 주인공)이 구두닦이 통을 어깨에 메고 단테(미겔의 개, 멕시코 토종견  ‘숄로이츠퀸틀’)와 함께 어느 골목에선가 튀어 나올 것 같다.

돈키호테일까,  저 멀리 삐삘라 동상이 보인다
돈키호테일까,  저 멀리 삐삘라 동상이 보인다

 

충격적인 ‘미라 박물관’

은근한 오르막에 지쳐, 가다 쉬기를 반복한다. 일교차가 심한 곳이다 보니 두꺼운 외투는 진즉에 벗어 허리에 묶고 그늘을 찾기 바쁘다. <코코>의 모티브가 된 공동묘지를 찾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공동묘지를 찾으며 길을 물어 간 곳에 미라 박물관이 나타난다. ‘공동묘지와 미라 박물관!’ 멕시코 현지인과 한국인의 서툰 영어가 만난 결과가 그럴 듯하다.
‘미라 박물관’에 대해 무슨 기대를 하겠냐마는, 어쨌든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들어선 ‘미라 박물관’은 충격적이다. 미라 몇 구 전시해놓은 수준이라 예상했으나, 끝도 없이 나타나는 미라의 수에 놀라고(나중에 들으니 100구가 넘는다고 한다), 미라의 다양한 포즈와 표정에 놀란다. 예상치도 못한 태아 미라(나중에 들으니 세계에서 가장 작은 미라라고 한다)를 보고 진짜 미라인지 의심까지 하게 된다. 으스스한 기분에 움츠러들었던 몸은 박물관을 나올 무렵에는 그 어떤 미라를 보고도 놀라지 않는다. 인간의 적응력은 실로 대단하다. 미라 박물관 내에 있는 안내 표지판 그림이 죄다 미라로 되어 있는 것을 보니 귀엽기조차 하다.

미라의 표정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미라의 표정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미라 박물관에서 만난 한국인 여행자 두 명과 동행이 되어 코코의 공동묘지를 찾아가기로 한다. 공동묘지로 가는 길에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과나후아토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엄마, 부산에서 가 본 마을 같아.”

감천마을을 이야기하나 보다. 아이의 말을 듣고 보니 정말 감천 마을과 비슷하다. 아무리 낯선 곳에 가더라도 내가 아는 익숙한 무엇인가와 연결시켜보려는 성향은 누구에게나 있나 보다. 아이는 과나후아토에서 낮에는 감천마을을 보고, 밤에는 창원을 보나 보다. 어쩌면 아이는 지금 한국이 그리워, 계속 한국과 비슷한 무엇인가를 찾아서 위로를 받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부산 감천마을이 떠오른다
부산 감천마을이 떠오른다

 

한국의 공동묘지와 다른 <코코>의 공동묘지

드디어 <코코>의 공동묘지다. 한국의 공동묘지와는 많이 다르다. 묘지에 들어서는 순간, 아기자기한 마을을 보는 기분이다. 죽은 자들의 마을 같다. 묘지의 크기와 모양이 다양하고 꾸며놓은 장식도 제각각이다. 묘지를 장식한 것들이 비슷하지만, 똑같지가 않으니 보는 재미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고 살아 있을 때 그들을 생각하며 꾸몄을 것이다. <코코>에 나올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는 곳이다. 같은 숙소에 묵고 있는 여행자가 추천한 레스토랑에서 같은 숙소의 또 다른 여행자와 만나기로 약속을 한 터라, 마음이 급하다. 도저히 시간을 맞출 수 없어, 늦는다는 문자를 보내놓고 부지런히 걷는다. 레스토랑에서 만난 여행자는 걸어서 묘지까지 갔다는 말을 듣더니 깜짝 놀란다. 자기는 시내버스를 타고 이동했다며, 오르막길이 만만치 않았을 거라고 이야기한다. 아이는  다리도 아프고 너무 힘든데, 엄마와 아빠가 감탄을 하며 사진기를 눌러대는 통에 당연히 걸어가야 하는 줄 알았다며 뒤늦게 짜증을 낸다. 숙소에서부터 걸었으니 지치는 게 당연하다. 사실을 말하자면, 우리는 버스가 있는 줄 몰랐다.

죽은자들의 마을같은 공동묘지
죽은자들의 마을같은 공동묘지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 품고 있는 ‘키스의 골목’

고생한 아이의 비위를 맞추느라 아이스크림을 사주고, 또 다시 과나후아토 시내를 둘러본다. 사람들이 줄을 서있고, 환호성 소리가 나는 곳을 따라가 보니 과나후아토의 랜드마크 ‘까예혼 델 베소(키스의 골목)’이다. 텔레비전 여행 프로그램에서 보던 곳이다. 이루어지지 않은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를 품고 있는 ‘키스의 골목’이다. 키스 골목의 3번째 계단에서 연인과 키스를 하지 않으면 불행이 닥친다는 이야기 때문인지 계단에서 키스를 하기 위해 연인들이 줄을 서 있다.

계단과 테라스에서 키스를 하고 있는 연인들을 보고 있으려니, 많이 어색하다. 사랑하는 연인들의 자연스런 행동에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리게 되는 것은 문화 차이 때문일까, 세대 차이 때문일까? 일단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우리는 죽었다 깨어나도 저 줄에 설 수 없을 듯!
주요 관광지를 둘러싸고 바깥으로 빠지는 좁은 골목들이 보인다. 남편은 계속 그 골목들이 궁금한가보다. 과나후아토가 아무리 안전한 여행지라 하더라도, 그 골목을 빠져 나가지 말라는 경고를 들었기에 골목 앞에서 계속 망설이게 된다. 궁금하지만, 안전을 위해서 참자며 소매를 잡아당긴다. 특별히 무엇을 보기 위해 이동을 하지 않아도 되니 더 없이 좋은 과나후아토다. 과나후아토의 전망을 보기 위해 삐삘라 동상이 있는 곳을 갈 수도 있으나, 어제 밤에 야경을 보기 위해 갔었고, 공동묘지 가는 길에 과나후아토 전경을 보았기에 가지 않기로 한다. 이 골목 저 골목을 걷다보니 시장이 나오고, 공원이 나온다.

 

 

여행 열흘째 아이의 ‘향수병’ 시작

사진 찍기 놀이에 빠져 있는데, 아이가 이제 그만 집에 가자며 울먹인다. 아이의 컨디션이 좋지 않다. 너무 많이 걸어 지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물갈이를 하나보다. 화장실을 계속 찾는다. 멕시코의 화장실은 한국과 다르다. 지금은 집으로 돌아갈 때다. 우버를 타고 숙소로 가는 길에 아이를 보니 몸도 마음도 지쳤는지 표정이 슬퍼 보인다. 어제 저녁 자신도 인식하지 못했던 자신의 감정을 알게 된 뒤부터, 문득 문득 우울한 표정을 짓는다.
아이의 우울한 표정을 보니 생각지도 못한 죄책감이 고개를 든다. 아이는 우리의 여행을 아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뱃속에서부터 세뇌되어 버린 탓이다. 여행에 대해 아이의 의견을 묻지도 않았고, 동의도 구하지 않았다. 오후에 여행을 떠나게 된 엄마가 새벽잠을 자는 아이를 억지로 깨워 데리고 나온 꼴이 되었다. 아이는 좀 더 자고 싶고, 새벽 공기는 아직 차갑다.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어른이라는 이유만으로 아이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란 죄책감이 더해져 나의 여행 배낭이 더 무거워지는 기분이다.
<코코>의 고향 과나후아토에서 아이의 ‘향수병’이 시작될 줄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다. 그것도 여행을 떠나온 지 고작 열흘이 지났을 뿐인데. 아이의 ‘향수병’이 어떤 방향으로 흐르고, 우리의 여행에 어떻게 작용할지 모르니, 이것을 설레고 기대된다고 해야 하나, 걱정된다고 해야 하나. 미겔이 생각지도 못한 망자들의 세상으로 여행을 떠난 뒤 그곳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았듯, 예기치 못한 아이의 ‘향수병’으로 우리 여행의 정체성을 찾게 되지 않을까?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부딪혀 보는 수밖에.

 

ㆍ글 강주혜
ㆍ사진 김정태 

 

저작권자 © 월간경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기사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Back to top
  • 경상남도 창원시 성산구 중앙대로210번길 3 (주)경남신문사
  • 대표전화 : 055)210-6181
  • 팩스 : 055)210-6170
  • 법인명 : (주)경남신문사
  • 등록번호 : 창원, 라00034(2020-06-03)
  • 발행·편집인 : 이종붕
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