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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50에 배낭 메고 떠난 가족 여행 11화

우리를 무장해제 시킨 마을, 쿠바 트리니다드

  • Editor. 월간경남
  • 2021년 05월호

트리니다드, 여행자가 쿠바에 기대하는 모든 것이 존재한다는 곳.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 도시라는 이름에 걸맞게 16세기에서 시간이 멈추어버린 듯한 마을.
여행자가 기대하는 모든 것들의 존재

빗물이 고여 있는 웅덩이 마저 멋스러운 트리니다드

 

오래된 벤츠, 쿠바 올드카의 클래스 만끽

벤츠다. 역시 쿠바다. 그래 올드카라면 저 정도는 돼야지. 깔끔한 복장의 택시기사는 마치 5성급 호텔의 호텔리어처럼 차 문을 열며 우리를 맞이한다. 우리 역시 5성급 호텔에서 자고 나온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차에 오른다. 벤츠는 아바나에서 트리니다드로 우리를 데려다줄 쿠바의 택시다. 먼 길 떠나는 날이라 신경을 쓴 덕분인지 차의 겉모습은 ‘올드’스럽지 않다. 시동이 걸리는 순간 우리는 각자 편한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며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는다. 벤츠에서 오토바이 소리가 난다. 
아바나에서의 꿈같은 시간을 일시 정지시켜놓고, 우리는 트리니다드로 간다. 큰 배낭을 아바나 숙소에 보관하고 가벼운 복장으로 나서니, 여행지에서 또다시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다. 같은 숙소 여행자와 품앗이로 택시를 빌렸다. 이곳에서는 이렇게 타는 택시를 콜렉티보 택시라고 한다. 비아술(쿠바 버스)에 비해 비싸긴 하나, 시간과 에너지 절약을 위해 선택한 택시다. 동행한 여행자는 중년의 아저씨로, 큰 병을 앓고 난 뒤 ‘뭣이 중헌디!’란 질문의 답을 찾았다고 한다. 그 뒤 매년 시간을 따로 내어 세계 구석구석 여행을 다니시는 중이다. 
관리되지 않고 버려진 듯, 잡초 무성한 벌판이 차창 밖으로 연이어 지나간다. 한낮의 열기 때문인지 아이는 땀을 흘리며 창문을 열어 달라고 한다. 아무리 찾아도 창문 내리는 버튼을 찾을 수 없다. 기사님께 창문을 열고 싶다고 하니 난처한 듯 웃으시며 에스파뇰로 중얼거리신다. 이내 갓길에 차를 세우더니, 트렁크에서 뭔가를 꺼내신다. 창문을 내리는 레버다. 차 문 안쪽 고장 난 자리에 레버를 끼우더니 돌리신다. 이것이 바로 쿠바 올드카의 클래스다. 
우리가 탄 차 앞에 마차가 간다. 마차를 추월해 시원스레 달려도 될 법한데, 마차의 속도에 맞추어 덜덜거리며 느리게 가는 올드카. 왜 추월하지 않는 거지?

 

사진기를 보고 응시하는 할머니. 사진을 찍고 난 뒤 보여드리니 웃으신다. 저 주름 속에 어떤 이야기가 들어 있을까. 쿠바 혁명의 역사가 저 주름 속에서 숨 쉬는 듯하다.
구슬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 우리와 비슷한 놀이라 반가웠다.


16세기 스페인 식민지 시대 건물과 거리가 완벽하게 보존

트리니다드, 여행자가 쿠바에 기대하는 모든 것이 존재한다는 곳이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 도시라는 이름에 걸맞게 16세기에서 시간이 멈추어버린 듯한 마을이다. 16세기 스페인 식민지 시대 건물과 거리가 완벽하게 보존돼 있다. 비가 왔는지 포장이 되어 있지 않은 도로는 젖어 있고, 군데군데 물웅덩이가 있다. 엄마 손을 잡고 가던 아이는 한눈을 파느라 물웅덩이에 한 발을 빠뜨린다.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내가 트리니다드에 저 풍경을 보러 왔구나!’
낯선 도시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낯선 사람들이 낯설지 않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구를 만나지도 않고, 경이로운 풍경을 보지도 않고, 하물며 도착한 지 한 시간 정도가 겨우 지났을 뿐인데, 이곳에 정이 들어버렸다. ‘트리니다드’가 따뜻하다.

수공예품 시장 입구. ‘여긴 쿠바’라고 말하는 기념품들이 즐비하다.
옆집에 놀러간 아이가 테라스에서 손을 흔들며 나를 부르고 있다.
우리가 묵은 까사에서 바라본 마을 풍경

 

차메로 아저씨네, 한국 여행자들의 만남의 광장

트리니다드의 온도를 1도 높여준 이는 ‘차메로’ 아저씨다. 트리니다드를 찾는 한국 여행자들은 대부분 차메로 아저씨네를 거쳐간다. 한국 여행자들의 만남의 광장이다. 차메로까사의 로비에는 쿠바 국기와 나란히 태극기가 걸려 있다. 심지어 ‘차메로’를 한글로 써 놓았다. 한국 여행자들이 남긴 여행가이드북은 매일 업그레이드 된다. 여행자들은 그 가이드북을 보고 여행 계획을 세우고, 맛집을 찾아 가고, 트리니다드의 숨겨진 보석 같은 이야기를 찾는다. 그리고 뒤에 올 여행자를 위해 그곳에 자기의 여행 기록을 남긴다.
차메로 아저씨네에 들어가자마자 ‘웰컴드링크’를 권하며 우리를 반갑게 맞아준다. 가식 없는 친절이 느껴진다. 더위에 지친 나에게 아이스커피와 아이에게 무알코올 모히토를 건네며 마치 우리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외삼촌 같은 표정을 짓는다. 여행자들이 ‘차메로 차메로’ 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승마투어, 사탕수수 관제탑 등 당일 투어 상품 인기

트리니다드에 특별한 관광명소가 있는 것은 아니나, 트리니다드 인근의 바닷가나 승마투어, 사탕수수 관제탑 등 당일 투어를 할 수 있는 상품들은 꽤 있다. 우리는 고민하지 않고 승마를 선택한다. 제주도에서 세 번의 승마체험을 한 아이는 승마라는 말을 듣자마자 노래를 불렀기 때문이다.

말을 타고 가는 모습이 영화 속 장면 같다.

승마투어를 먼저 다녀온 여행자가 엉덩이에 물집이 잡혔다는 말을 하는 순간 패션은 쓰레기통에 집어 던지고, 가져온 바지를 모두 꺼내 겹으로 입는다. 말을 타고 가다 지칠 때쯤 되면, 사탕수수 주스, 커피 등을 즐길 장소가 나타난다. 흡연자를 위한 시가가 제공되기도 한다. 계곡에서 한바탕 물놀이를 즐기고 내려오는 길에 레스토랑에 들러 식사를 하며 일정이 마무리 된다. 사탕수수 주스도, 커피 로스팅, 그라인딩, 드립까지 예전의 방식을 고수한다. 절구에 볶은 커피를 넣고 방망이로 빻는 모습은 정말 인상적이다. 쿠바인들은 절구에 방망이질을 하면서도 리듬을 타며 몸을 흔든다. 어디를 가도 흐르는 쿠바의 음악은 트리니다드 계곡에서도 물을 따라 흐르고 있다.

승마투어 중 만난 레스토랑. 저 모습을 보고도 고기를 먹다니
승마투어 중 만난 레스토랑. 저 모습을 보고도 고기를 먹다니

왕복 4시간의 승마에 기진맥진한 우리는 집에서 쉬고 싶다. 아니, 어른들은 쉬고 싶다. 아이의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집에 오자마자 샤워를 마치고 살사 교실로 뛰어가는 아이. 트리니다드에 오는 날부터 배우기 시작한 살사에 푹 빠졌다. 한국 언니들 따라 놀러 가더니 춤바람이 단단히 나버렸다. 쿠바에 살사 유학을 보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할 정도로 잘 한다. 살사 선생님과 아이는 금방 친구가 되어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친구처럼 지낸다. 트리니다드 거리를 걷다가 멀리서 “Lisa!”라고 부르며 손을 흔드는 살사 선생님은 쿠바만큼 매력적이다.

 

생선 파는 아저씨. 자전거에 싣고 다니며 팔고 있다.
거리의 이발사. 이발사도 손님도 진지하다.
거리의 이발사. 이발사도 손님도 진지하다.
구두 닦는 아저씨. 어딜 보고 계시나요.
구두 닦는 아저씨. 어딜 보고 계시나요.

 

트리니다드에서 살아보기! 강추

특별한 관광명소가 없다고 하지만, 트리니다드는 그 자체가 훌륭한 관광명소이다. 굳이 표현하자면, 트리니다드에서 살아보기! 
트리니다드는 영화 세트장 같은 마을이다. 색이 바랜 집들은 낡았기에 더 멋스럽다. 우리가 묵고 있는 숙소는 아기자기한 인형의 집 같다. 중정에 흔들의자가 있고, 우리 방에는 작은 테라스가 있다. 테라스에 나가면 처마 아래에 앉아 있던 쿠바노들이 손을 흔들어 준다. 촬영 대기 중인 연기자 같은 쿠바노들. 카메라가 보이면 응시하며 웃어주고, 포즈를 취해준다. 따그닥따그닥 말발굽 소리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무엇보다 저렴한 먹거리들이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한낮의 더위가 지나면 동네 마실 나가듯 거리로 나가 3모네다(한화 150원 정도) 아이스크림을 사 먹고, 배가 출출하면 10모네다 피자를 사 먹는다. 심지어 랑고스타(랍스타)는 1만2,000원 정도의 가격으로 즐길 수 있다. 처음 랑고스타를 먹은 날 남편과 손을 부여잡으며 1일 1랑고스타를 하자고 할 정도로 맛도 좋다.

1만2,000원 정도에 즐길 수 있는 랍스타요리, 한국인의 입맛에 맞다.
1만2,000원 정도에 즐길 수 있는 랍스타요리, 한국인의 입맛에 맞다.

이른 아침의 말발굽 소리는 더 크게 울리면서 멀리 간다. 눈뜨자마자 테라스에 나가 맥주를 물처럼 마시는 남편을 보고도 잔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춤바람 난 딸아이를 기다리며, 자연스럽게 처마 밑에 앉게 되는 나는 반쯤은 쿠바노가 된 듯하다. 눈이 마주치는 쿠바노들과 자연스럽게 “Hola! Amigo!”를 외치고, 거리의 쿠바노들과 눈인사를 나누고 있다.

걸어서 다닐 수 있는 트리니다드. 그래서 더 좋다
걸어서 다닐 수 있는 트리니다드. 그래서 더 좋다


트리니다드에서의 시간은 느리게 흘러간다.

아이는 옆집에 놀러 가고, 남편은 동네 산책하러 나간다. 나는 숙소에서 낮잠을 즐긴다. 진정 해보고 싶었던 여행을 즐기는 중이다. 대단한 것을 보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되고, 벅찬 감동을 끌어낼 필요도 없다. 저녁이 되면 마요르 광장에 나가 모히토를 마시며 음악과 살사를 즐긴다. 밤에 다녀도 안전한 마을 트리니다드. 이곳에서 우리는 무장해제를 당하고도 기분이 좋아 헤헤거린다. 결국, 우리는 숙소를 이틀 더 연장한다. 
테라스 밑에서 열쇠를 던져달라며 고개를 들고 나를 부르는 남편, 남편에게 열쇠를 던지는 나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시중과 하녀쯤 되려나? “엄마” 하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아이가 옆집 테라스에서 웃으며 손을 흔든다. 이 모든 장면이 슬로우 모션으로 나의 기억 속에 각인된다.
트리니다드에서의 시간은 느리게 흘러간다. 그 속도에 맞추어 우리도 느리게 흐르고 있다. 마차를 추월하지 않은 올드카는 트리니다드의 속도에 맞추어 달렸나 보다. 이미 그때부터 우리의 몸은 트리니다드의 속도에 적응하기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성 트리니다드 교회. 사회주의 국가에서 만나는 교회라 더 눈길을 끈다.
성 트리니다드 교회. 사회주의 국가에서 만나는 교회라 더 눈길을 끈다.
어디서든 음악이 흐르는 쿠바다. 트리니다드도 예외는 아니다.
어디서든 음악이 흐르는 쿠바다. 트리니다드도 예외는 아니다.

 

ㆍ글 강주혜
ㆍ사진 김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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