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 노르웨이 | 133분 | 2026.2.18.개봉 | 15세 이상 관람가
감독 : 요아킴 트리에 Joachim Trier
출연 : 레나타 레인스베, 스텔란 스카스가드, 엘 패닝
수입·배급 : 그린나래미디어㈜
줄거리 : 오래전 집을 떠났던 영화감독 구스타브가 배우가 된 딸 노라에게 “너를 위해 쓴 각본”이라며 신작의 주연 자리를 제안하러 돌아온다. 동생과 달리 아버지가 편하지 않은 노라는 제안을 거절하고 그 역할은 할리우드 스타에게 돌아간다. 해지지도 않고, 헤어질 수도 없는 관계 속에서, 한 편의 영화와 함께 두 자매와 아버지는 이해할 수 없었던 자신과 서로를 마주한다.
이 영화는 ‘가족 영화’가 아니다
Sentimental Value를 단순히 가족의 재회 이야기로 읽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이 영화는 관계보다 ‘기억의 작동 방식’을 탐구한다. 누가 옳았는가가 아니라, 왜 같은 시간을 서로 다르게 기억하는가가 핵심이다. 트리에는 사건을 재현하지 않고, 기억이 현재를 어떻게 왜곡하고 재구성하는지에 주목한다. 그래서 장면은 설명이 아니라 심리적 잔상처럼 남는다. 이 작품은 서사가 아니라 감정의 구조를 해부하는 영화다.
예술과 자기기만 사이
영화 속 아버지는 창작자다. 그러나 이 영화는 예술가의 고독을 낭만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정당화되었던 선택들을 조심스럽게 흔든다. 창작은 타인을 소모하지 않고 가능한가. 트리에는 이 질문을 인물의 표정과 멈칫거림 속에 숨겨둔다. 예술적 진정성과 개인적 책임은 때로 같은 방향을 보지 않는다. 영화는 바로 그 어긋남을 응시한다.
트리에 영화의 진화
트리에의 전작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가 한 인물의 방황과 선택을 따라가는 감정의 연대기였다면, 이번 작품은 훨씬 정적인 구조를 취한다. 대신 감정은 더 깊게 가라앉는다. 그는 여전히 인물의 내면을 응시하지만, 이번에는 세대의 층위를 겹쳐놓는다. 한 사람의 성장 서사가 아니라, 한 가족의 시간 층이 겹쳐지는 방식이다.
대화보다 침묵이 많은 영화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말 사이의 공백이다. 인물들은 충분히 말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완전히 침묵하지도 않는다. 카메라는 그 미묘한 균열을 오래 붙든다. 장면은 감정이 터지는 순간이 아니라, 감정이 눌리는 순간에 집중한다. 관객은 그 눌림을 감각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이 영화는 ‘보는’ 영화라기보다 ‘체감하는’ 영화에 가깝다.
세대의 윤리, 책임의 문제
이 품은 결국 책임의 문제로 수렴한다.
부모 세대는 자신의 선택을 시대의 맥락 속에 놓으려 하고, 자녀 세대는 그 선택의 결과를 감당해 온 시간으로 말한다.
여기에는 명확한 가해자도, 완전한 피해자도 없다. 다만 서로 다른 윤리가 충돌할 뿐이다.
트리에는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다. 대신 그 충돌이 만들어내는 정서적 균열을 끝까지 바라본다.
조용한 영화가 큰 무대에서 인정받은 이유
이 작품은 2025년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되어 심사위원대상(Grand Prix)을 수상했다. 자극적인 형식 대신 심리의 미세한 진동을 선택한 영화가 그 자리에서 인정받았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
이는 세계 영화계가 보다 내밀한 감정과 관계의 윤리에 다시 눈을 돌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트리에는 거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대신 가장 가까운 사람들 사이의 균열을 통해, 우리가 지금 어떤 감정의 시대를 통과하고 있는지 묻는다.
하효선
· 창원국제민주영화제 집행위원장
· 수석 프로그래머
· 씨네아트리좀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