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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영화 촬영지] 영화 ‘정순’으로 찾아가는 양산

[이달균의 영화 돋보기] 오십 순정, 정순을 깨고 나오다

  • Editor. 월간경남
  • 2026년 03월호

양산 출신 정지혜 감독
경남 로케이션 사업 바탕
고향 배경으로 첫 영화화
어묵공장 등 12곳 촬영
로마영화제 등 수상 쾌거

 

영상문화도시로 도약하는 양산시

다시 양산 간다. 양산시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통도사와 천년고찰 내원사 등의 역사 유적과 웅상·물금지구로 대변되는 첨단산업이 만나 새로운 시너지효과를 내는 인구 38만의 미래도시다. 

실제 경남 대부분의 도시가 청년 인구 유출의 위기를 겪고 있는 데 반해 양산은 성장하는 도시로서의 위상을 갖고 있기에 상당한 차별성이 있다.

이런 환경적 요인은 문화 양산으로의 변모를 가능케 한다. 양산에 돋보기를 대면 지역 곳곳은 찬란한 문화유산으로 피어난다. 양산시와 문학과의 관계성을 살펴보아도 주목해 봐야 할 부분이 많다. 먼저 저항과 비판 정신의 표상이 된 소설가 김정한(1908~1996)이 생각난다. 선생은 생의 대부분을 부산에서 보냈지만, 그의 묘소는 신불산 공원묘지에 있다. 그래서 선생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양산을 찾곤 한다.

천성산
천성산

국민 동요 ‘고향의 봄’의 이원수 또한 창원의 아동문학가로 유명하지만, 선생의 태생지는 양산이다. 그래서 현재 양산시는 북정동 산 47의 2 일대 2만6486㎡ 부지에 이원수 문학기념관, 생가 복원, 답사코스 개발 등 ‘고향의 봄’ 공원 조성을 위해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런 문학적 자양분을 바탕으로 양산시는 영상문화도시로 거듭나겠다는 의욕을 보여왔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양산과 영화와의 등식이 그리 낯설지는 않다. 이 글을 쓰면서 양산이 경남의 새로운 영화 메카로 성장하기 위한 노력은 현재진행형임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양산과 영화는 그리 낯선 조합이 아니다. 

2022년부터 양산영화인협회는 양산영화제를 열어 영화를 통해 시의 품격을 높이는 시도를 하고 있다. 제1회 때엔 정준호, 손병호, 장현성 등 50여명의 배우가 레드카펫을 밟으며 양산 시민들과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영화 영상 문화의 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장흥저수지
장흥저수지
벚꽃산장
벚꽃산장

 

영화 ‘정순’으로 보는 양산시 곳곳

‘정순’은 이런 바탕 위에서 제작된 결과물이다. 이 작품은 ‘경남 로케이션 인센티브 지원사업’으로 만들어졌다. 그런 까닭으로 영화에 등장하는 로케이션 총 14곳 중 12곳을 양산 일대에서 촬영했다. 2024년 5월 4일엔 경남도민을 대상으로 CGV 양산삼호에서 무료 시사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영화 상영 후엔 정지혜 감독과의 만남을 통해 더욱 재미있고 의미 있는 시간을 가졌다.

특히 그날 시사회는 양산 효암고등학교 출신인 정지혜 감독의 고향에서 열린다는 것에 큰 의미를 더했다. 
영화 시사회가 흔치 않은 지역이니만큼 관객 반응과 만족도는 예상보다 높았다. 천성산 등산로와 장흥저수지, 소주공단에 있는 부산어묵공장, 대운산 아래 벚꽃산장, 덕계 번영로 등 낯익은 곳곳이 영상에 비칠 때마다 관객들은 새로운 체험을 한 듯 눈을 빛냈다.

‘정순’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일전에 ‘엽기적인 그녀’를 쓰면서 “양산에서 찍으면 대박 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오늘 거론하는 영화 ‘정순’ 또한 독립영화계를 강타한 대박 영화로 등극했기에 그 말은 사실이란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이제 영화 속으로 들어가 보자. 50대의 가장 흔한 이름, 평범한 얼굴과 몸매, 당장이라도 길에서 만날 듯한 수더분하고 펑퍼짐한, 뭐 하나 눈길 줄 만한 데 없고, 눈치가 빠르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특별한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닌 여성 정순(김금순). 영화를 보는 내내 그 특별하지 않음을 사실적으로 연기한 그 특별한 배우가 궁금했다. 분명 배우 김금순의 캐스팅은 신의 한 수였다.

영화 ‘정순’ 스틸컷
영화 ‘정순’ 스틸컷
영화 ‘정순’ 스틸컷
영화 ‘정순’ 스틸컷

정지혜 감독을 응원하고 싶다. 독립영화로 이만한 성공을 거둔 것을 보면 분명 미래가 기대된다. 더욱 반가운 것은 우리 경남에 살고 있는 젊은 여성 감독이기에 주목해 보는 건 당연하다.

영화 ‘정순’은 중년 여성이 직면한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다룬다. 카메라는 식품 공장에서 일하는 중년 여성 정순을 정면에서 비춘다. 
남의 이야기라기보다 우리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에 공감의 폭이 크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만의 비밀이 있다. 그런데 어느 날 뜬금없이 그 사실이 영상으로 유포되었다면 심정은 어떨까.

정순은 남편 없이 혼자 사는 여자다. 결혼 준비를 하는 딸을 두고 있으며 삶의 재미나 큰 의미도 없이 그저 권태로운 하루하루를 보낸다. 직장에서의 일은 비닐 포장된 어묵을 박스에 담거나 작업복을 소독하고 세탁하는 등 전혀 특별하지 않은 일상이다. 
그 작은 조직 내에서도 작업반장의 갑질에 가까운 호령이 있고, 나이가 젊은 축과 정순 또래의 중년 여성들 간의 세대차로 인한 감정 단절도 언뜻언뜻 드러난다.

그런 나날을 보내는 정순에게도 어쩌다 직장동료 영수와의 사적 만남이 이뤄진다. 이 또한 첫눈에 불꽃이 튄 사이도 아니다. 그저 회식 자리에서 느낀 연민이나 동류의식 같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정들고, 정들다 보니 깊은 만남으로 이어진 것이다. 어느 날 영수는 정순이 침대 위에서 속옷 차림으로 노래하는 장면을 스마트폰으로 찍는다. 정순은 큰 거부감 없이 그런 장난을 내버려두었다. 영수는 무슨 이유인지 그 영상을 단톡방에 올렸고, 결과는 우리가 상상하는 양상으로까지 번지게 된 것이다.
그날부터 정순과 그녀를 둘러싼 사람들의 우여곡절이 시작된다. 그녀의 일상이 어떻게 진행되고 어떻게 흘러갈지가 관건이다. 여기에 감독이 이 상황을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갈 것인가를 보는 재미가 있다. 이 영화의 미덕은 그로 인한 절망 혹은 비극적 결말을 짓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화 ‘정순’ 스틸컷
영화 ‘정순’ 스틸컷
영화 ‘정순’ 스틸컷
영화 ‘정순’ 스틸컷

이미 엎질러진 물인 이 상황 역시 내 삶의 한 부분으로 인식하면서 스스로 치유를 위한 항바이러스제를 생산하는 몸짓을 보여준다. 이는 망각이나 체념과는 다른 모습으로 승화되어 관객이 원하는 결론에 이르게 한다. 자칫하면 이 부분에서 설득력을 잃을 수 있는데 감독은 지혜롭게 관객과의 공감대 형성에 성공한다.

 

정순의 직장으로 나왔던 양산 어묵공장
정순의 직장으로 나왔던 양산 어묵공장


미래가 기대되는 경남의 청년예술인 정지혜 감독

정지혜 감독은 시간의 종이를 절반으로 접은 듯한 성숙함을 보여준다. 이런 상황을 극복할 묘안은 무엇일까? 디지털 성범죄를 전담하는 경찰의 힘도 일정 부분에 그칠 뿐이다. 시간에 내맡길 수도 없고, 짐짓 모른 척 일상을 살 수도 없다. 만약 내가 이 시나리오를 쓴다면 그녀를 어떤 결말로 이끌어갈까. 정순만큼 인생을 살아보지도 못한 감독이 그녀를 끌고 가는 힘이 예사롭지 않다.

정지혜 감독은 예전 경남신문 지면에서 먼저 만난 적이 있다. 2023년 5월 19일자, ‘문인이 만난 우리 시대의 청년예술인’을 통해서였다. 그때 김우태 시인과의 대담에서 “저 같은 젊은 영화인이 맘껏 영화를 제작할 수 있는 환경이 지역에도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희망을 밝힌 적이 있다.

최근 정 감독은 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하여 이 영화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한 식품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 중년 여성들의 노동 현장을 보면서 막연히 그녀들을 위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이후에 디지털 성범죄에 관한 일을 도운 적이 있었는데 피해자들이 겪는 고통이 많음을 알았고, 그 고통에 비해 처벌이 너무 약함을 알게 되었다. 특히 중년 여성의 경우, 신고율이 낮아 제대로 집계도 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는 젊은 여성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에게도 예외가 없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정지혜 감독의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하다.

 

이달균
이달균

글·사진 이달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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