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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ip in 경남] 고성 해지개 다리·시무덩·소을비포성지

[도희주의 반차 내고 여행] 겨울이 바다에 건네는 인사

  • Editor. 월간경남
  • 2026년 02월호

겨울 풍경은 치장 없이 단순하다. 지구의 알몸이 그대로 드러나는 계절. 겨울은 화려하지 않지만, 오히려 진솔한 몸짓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해안 풍경은 더 그렇다. 평소엔 우거진 숲이나 나무들 사이로 보이던 바다. 그나마도 섬이나 건너 해안의 푸른 숲이 먼저 눈에 들고 그다음 시선이 바다로 향한다. 그러나 겨울 맨몸의 바다는 단숨에 눈에 들고 가슴에 가득 찬다. 시리게 뜨거운 겨울 햇살이 수면에 그대로 부서지며 만들어내는 윤슬은 눈물겹다. 고성 자란만 해안도로를 달리면 겨울은 신선한 해풍으로 가슴을 관통한다. 그 느낌이 짜릿하다.

고성 삼산면 장백마을 시무덩 바위. 햇살을 튕겨내는 윤슬 위로 가늘고 긴 돌섬 하나가 보인다

 

해가 지는 ‘해지개 다리’

고성IC를 지나 고성읍 남해안대로. 가끔 다니는 길이지만 새해답게 주변의 풍경이 새롭다. 도로 옹벽엔 담쟁이들이 미온의 햇살에 옹송그리며 아직 먼 봄날을 기다리고 있다. 편도 2차로는 단속카메라들이 눈을 부라린다. 고성 가는 길은 유별나게 단속카메라가 많게 느껴진다. 무조건 안전거리를 유지하는 게 좋다. 물가가 천정부지로 솟는데 딱지라도 끊기면 엄한 돈 나가고 속 쓰리고 입맛 떨어진다.

해지개다리 전경

곡용교차로에서 우회전이다. 정면으로 바다가 다가온다. 곡용마을 쉼터 팔각정을 지나며 적당히 표면이 드러난 바다도 잠시 두기로 한다. 우측 옹벽을 끼고 완만한 경사로를 오른다. 지방도 1010호선. 금방 좌측에 바다가 펼쳐진다. 그리고 해지개다리와 해안둘레길 덱 로드 풍경이 눈에 들다가 갑자기 유럽 해안마을에 뚝 떨어진 듯한 느낌이다. 오션스파호텔 옆에서부터 고성군 유스호스텔 광장까지 덱 로드가 구불구불 이어진다.

초승달 포토존에서 바라본 하트전망대
해지개 다리 해안둘레길

해안둘레길엔 하트전망대와 더불어 하트 포토존, 초승달 포토존, 천사날개 포토존 등이 있다. 초승달 포토존에서 하트전망대 방향으로 벽면의 공룡 트릭아트도 놓칠 수 없다. 가칭 ‘초승달 코스’의 초승달 포토존 앞에 섰다. 운전할 땐 야산 그림자에 가려 잘 보이지 않던 ‘하트전망대’를 보며 나그네도 넌지시 손가락 하트를 내보였다. 

해안둘레길의 공룡 트릭아트 벽화

해안둘레길 깊숙이 들어온 바다를 가로지르는 ‘해지개 다리’는 해상보행교다. 썰물에 드러난 교각을 보기 위해 바다 시간을 맞췄다. 시간 따라 높낮이를 달리한다. ‘해지개’는 ‘해가 지는 곳’이라는 순우리말로 남포만 일대의 경관을 백분 활용했다. 일몰 후엔 밤 11시까지 이국적인 ‘야경 맛집’이 된다.


문득 만난 절경 시무덩

남포항 지나 우회전이다. 공룡로. 좌측엔 수협공판장과 수협이 있고 고성해양파출소도 보인다. 멀지 않은 거리에 고성만을 전망으로 고층아파트 대단지가 하늘을 가리고 있다. 입주민들에겐 바다정원의 짭조름한 풍경과 세대마다 다양한 각도로 윤슬이 거실로 밀려들 것 같다. 곡선주로 100m 전방은 예측 불가다. 순간에 보이고 순간에 사라지지만 짜릿한 여운은 곡선주로의 백미다. 길은 반복적이다. 룸미러에 뒤에서 달려오는 승용차가 보여 얼른 길가로 붙었다. 총알처럼 휙 지나간다. 보기만 해도 손에 땀이 난다. 007영화 시리즈에서는 이런 길을 질주하는 추격전이 많지만, 아서라 우리 같은 범부는 천상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구불구불 접힌 구간을 노크하듯 조심스럽게 접어든다. 직선 주로로 내달리기보단 해안선을 펴가며 느긋하게 주행하면 풍경이 액자처럼 펼쳐진다.

삼산면보건지소와 농협을 지나 삼거리에서 좌회전이다. 논둑 노거수 한 그루의 수형은 그 많은 가지에 나뭇잎 한 장 없다. 그야말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이다. 한겨울의 표지판이나 다름없다. 77번 국도로 이어지며 뜬금없는 산길이다. 우측에 ‘소가야중학교’ 교명이 한눈에 들어오며 도심지의 웬만한 중학교 건물보다 훨씬 규모가 크다. 잠깐 정차해서 검색한 결과, 고성중학교 삼산분교·하일중·상리중 통폐합해 지역거점 공립 기숙형 중학교라고 한다. 2016년 3월 1일 개교한 사실을 알게 됐다. 삼봉삼거리에서 장백마을 근처를 서행하는데 갑자기 왼쪽 바다 위에 한 폭의 눈부신 명화가 나타난다. 예상하지 못한 절경에 “저게 뭐야!” 급브레이크! 다행히 뒤따르는 차가 없다. 맑고 푸른 하늘, 눈 부신 태양, 잔잔한 바람, 그리고 햇살을 튕겨내는 찬란한 윤슬! 그 윤슬 위로 가늘고 긴 돌섬 하나가 인어처럼 누워 있다. 까만 암석. 클로즈업한다. 부동자세로 서서 앵글을 맞추는데 앵글 속 그림이 너무 예뻐 영혼이 빨려드는 느낌이다. 각도를 달리하고 높낮이를 바꿔가며 담았다. 어딜까 저긴. 그 자리를 뜨고 싶지 않지만 다른 과제들이 남아 있다. 아마도 저 풍경은 오래도록 내 마음속에 머물러 있을 것 같다.

고성군 삼산면사무소에서 장백마을 이상근 이장님 연락처를 받아 명칭을 알게 됐다. 마을 사람들이 부르는 명칭이 ‘시무덩’이다. 그런데 시무덩의 뜻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결국 컴퓨터를 구석구석 뒤져야 했다. 
시무덩의 뜻은, 바닷속에 움푹 패거나, 물이 깊게 고여 있는 곳. 조류가 비교적 잔잔하면서 물이 맴도는 해저 지형을 말한다. 또한 고성 자란만 해안 등 일부 지역에서 썰물 때 바닷물이 빠지면서 드러나는 바위나 얕은 웅덩이를 일컫는 지역 방언이라고 나와 있다. 아마도 시무덩의 ‘무덩’은 무덤의 방언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시간에 따라 수면 아래로 묻혔다가 나오기를 반복하니까. 유추해 보는 것은 자유다. 100m 거리의 ‘목섬’과 이어지는 자갈길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렇지만 나그네는 자갈길까지는 보지 못했다. 지형상, 시간상 역광이라서.


소을비포성지에 오르다

하일면 공룡로. 임포(林浦)마을 표석을 지나 ‘소을비포성지’로 내비게이션 안내를 따라 오래된 작은 마을을 들어선다. 길은 좁아도 승용차 한 대는 드나들 수 있는 너비다. 서행하며 골목을 구경한다. 좌측에 ‘삼팔다방’ 간판이 이채롭다. 요즘 흔한 ‘카페(cafe)’가 아닌 ‘다방’이다.

삼팔다방
삼팔다방

문득 호기심이 인다. 다방 이름을 누가 지었을까. 옛 어른들이 푸념처럼 늘어놓던 ‘삼팔따라지 인생’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이런 궁촌에 들어와서 다방을 개업한 사람의 심정은 또 어땠을까. 부모님 세대 사람들은 인생을 구절양장(九折羊腸)이라고 했다.
양의 장처럼 아홉 번 구부러지는 인생길을 말한 것이다. 서민들 삶은 늘 하루가 고비였고 예측 불가능한 삶을 살았다. 어느 모퉁이에서 삶이 바뀔지 알 수 없는 삶. 
다방의 주인이 궁금하지만 그건 호사스러운 호기심에 불과하다. 삼팔다방은 이미 오래전에 페인트 가게로 업종을 변경한 흔적이 있다. 그마저도 문을 닫은 지 오래인 듯 먼지와 거미줄에 유리창마저 성치 않았다.

소을비포성지 주변 해안은 멸종위기종인 상괭이 보호를 위해 해양생물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 
낚시도 금지다. 성지로 가는 길은 바다의 경계선과 인도 경계선 사이 경관용 무지갯빛 경계석이 길을 밝히고 있다. 주차장 건너 ‘소을비포성지’ 표지와 함께 출입구도 어딘지 가늠하게 한다.

비포진성 외곽
비포진성 외곽
비포진성 외곽
비포진성 외곽

‘거인과 달이 별이’ 이야기 안내판엔 거인의 캐릭터가 친근감 있다. 지역의 설화가 먼 옛날 일본군의 만행과 결부된다. 애잔하다. 누군가 스토리텔링으로 좀 더 부가가치를 더하면 좋겠다는 오지랖이 발동한다. 여름이면 밤하늘에서 영화처럼 별빛이 쏟아지기도 한다고. 은하수를 선명하게 볼 수 있는 명소로 한여름 주민들의 휴식처이기도 하다.

진성 아래 보이는 포구
진성 아래 보이는 포구
소을비포 역사광장 안내도
소을비포 역사광장 안내도

주차장에서 작은 출입구를 지나 입성한다. 명칭이 ‘소을비포성지’지만 진성(鎭城)에 가깝다. 성 언덕엔 아직도 억새들이 하늘거린다. 서쪽으로 뻗은 구릉의 9부 능선에 330m의 성체. 능선의 굴곡 때문에 전경을 풀샷으로 담을 수 없어 안타깝다. 성문의 문루는 보수공사 중이다. 군에 문의했지만 ‘소을’의 뜻을 알아내지는 못했다. 집에 와서 컴퓨터를 뒤져 알아낸 것은, ‘소을’은 ‘작고 가늘다’는 뜻의 순우리말로, 주로 지명이나 고유명사에서 사용한다고 한다.

소을비포진성 작은 출입구
소을비포진성 작은 출입구

그것이 한자의 음차로 소을(所乙)이 된 것으로 보인다. 한자의 음이나 모양을 따서 의미를 차용하는 경우도 많은데 ‘소을’의 경우 한자 을(乙)처럼 가늘게 이어진 지역(所)이라는 뜻으로 보인다. 실제로도 이곳 지형은 ㄷ(디귿)자 형태로 끊임없이 만과 곶이 이어지면서 좁지만, 해안선이 가늘고 길다. 그래서 해안 방어선도 길다. 소을비포(所乙非浦)라는 명칭은 소비포진(所非浦鎭)과 더불어 15~16세기부터 왜구의 침입에 대비해 병선이 정박하고, 군사적 방어와 해상 감시 임무를 수행한 수군 진영 명칭이다.

 

여행 Tip

▶ 해지개다리
고성군 고성읍 (수남리와 거운리 일대) 수남·거운 권역 단위사업 선정(2012년 농림수산식품부 주최)으로 2014년 9월에 착공해 2015년 11월에 준공했다. 신월리에 위치하며 길이 209m, 폭 3.5m. 해지개 해안둘레길은 덱 로드로 곡용마을 하트전망대에서부터 해지개 다리를 포함, 남포항까지 편도 1.4㎞ 구간으로 고성의 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 소을비포성지
고성군 하일면 동화리 398-4 외 9필지. 조선 성종 때부터 선조 때에 걸쳐 축조된 타원형 석축 성곽이다. 1491년(성종 22) 수군만호가 주둔했던 소을비포진성(所乙非浦鎭城)과 경상 우수영이 설치됐으며 1756년(영조 32)까지 여러 차례 보수했다고 한다. 1994년 경상남도기념물 제139호로 지정. 현재 200m 정도는 주춧돌이 지상에 남아 있고 높이 3.3m, 길이 5m 정도는 원형의 성지 흔적을 볼 수 있다.

글·사진 도희주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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