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미스터리·드라마 | 한국 | 121분 | 2024년 9월 11일 개봉 | 12세 이상 관람가
감독 | 오정민 출연 | 강승호·손숙·우상전·차미경·오만석·안민영·정재은·서현철·김시은·강태우
제작 | 영화사 대명 배급 | ㈜인디스토리
줄거리
3대 대가족이 모두 모인 제삿날. 일가의 명줄이 달린 가업 두부공장 운영 문제로 가족들이 다투는 와중 장손 ‘성진’은 가업을 잇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설상가상 갑작스레 맞닥뜨린 예기치 못한 이별로 가족 간의 갈등은 극에 달한다. 핏줄과 밥줄로 얽힌 대가족의 70년 묵은 비밀이 서서히 밝혀진다.
3대에 걸친 한국 가족사
‘장손’은 3대에 걸친 가족사로 축약된 한국의 모습을 세대, 젠더, 계급 갈등의 충돌 등으로 빚어낸 가장 한국적인 가족의 초상화를 그리고자 한 작품이다. 식민지와 6·25전쟁을 거치며 빨갱이라면 치를 떠는 할아버지, 어렵게 들어간 법대에서 독재에 저항하다 다리를 절며 낙향해 부모가 운영하던 두부공장을 운영하나 자주 술주정을 해대는 아버지, 그리고 MZ세대인 지금의 장손에 이르는 한국사가 녹아져 있다.
제사
이야기는 제사라는 가부장적 한국 공동체 문화의 정점에서 파열이 보이고 아마 곧 파국으로 치달을 것임을 알 수 있다. 제사를 지내기 위해 서울에서 배우생활을 하는 장손과 고모네가 오고 제사상 음식은 가까이 사는 여자들끼리 분주하게 한여름 기온을 올리고 있다. 바로 옆 방에는 남자들이 화투 놀이로 분주하다. 이 풍경에서 남자들과 여자들의 합리적이고 공정한 일 분담이라도 있다면 이 제사가 즐거운 일이 될 수 있는 것이었을까? 게다가 제사를 자정에 지내기를 고집하는 할아버지로부터 장손을 내세워 겨우 저녁 시간으로 지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아낸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는 종교와도 같이 꼭 지켜야 하는 일이나 나머지 가족에게는 그저 부담이며 중노동이다.
장례
이 가부장제의 일들을 지극정성으로 실행하며 자신의 가족이 운영하는 두부공장의 두부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한여름에 다시 불을 지펴 직접 두부를 만드는 성진의 할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장례는 더 이상 이 제도의 지탱이 어려울 것을 나타내고, 장례식장은 슬픔과 위로 그리고 축의금을 계산하면서 해학이 범벅이 된다. 그러나 토하듯 울부짖는 아들, 딸과 손자의 통곡은 역시 큰 공허와 슬픔이다.
남은 가족
성진의 고모는 돌아가신 친정어머니에게 매월 돈을 맡겨 놓았다고 하나 어디에도 그 돈을 맡겼다는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 그 일로 가족들 사이가 틀어지고 복지와 신뢰가 바탕이라고 믿고 간신히 유지했던 위계의 공동체는 와해된다.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할아버지는 오로지 장손 사랑으로 그 와해의 위험 속에서도 묵묵부답하다가 맑은 정신일 때 손자 이름으로 매달 입금된 통장을 장손에게 건네준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며. 이런 와중에 봄에 태어날 이 집안 장녀의 아이 ‘늘봄’의 아버지가 두부공장을 이어갈 수 있을까? 김씨 집안의 핏줄이 아니어도? 어쨌든 장손은 가족의 밥줄인 두부공장을 이어받을 생각이 없다.
이야기 전의 이야기
이렇게 귀결되는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이미 한국의 혈연 중심의 공동체는 와해됐다. 더 이상 누구에게도 이득이 되는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깊이 있고 끈끈하며 우애 있고 존경이 있으며 사회적인 책무도 함께 내재하고 실현하는 가족상이 그리울 때도 있다. 문제가 없을 수 없지만, 개인이 맞닥뜨리는 것보다 가족이 있어 힘이 되고 중지가 모이는, 꼭 혈연의 가족이 아니더라도 완충지가 되는 가족, 위로받을 수 있는 사람들은 있어야 한다. 이야기 이전의 이야기는 어느 순간 어느 시점에서 지속적으로 변화해 왔을 것이고 우리는 지금 다시 큰 변화의 과정에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3관왕
‘장손’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KBS 독립영화상, 오로라미디어상, CGK 촬영상 3개 부문에서 수상하며 평단과 관객의 주목을 받았던 작품이다. 그리고 서울독립영화제, 무주산골영화제 및 시드니영화제, 멜버른국제영화제, 벤쿠버국제영화제 등 해외 유수의 영화제에 초청돼 주목받은 영화이다.
오랜만에 풍요로움과 가능성을 가득 채운 비중 있는 한국 독립영화를 만났다. 달려가 볼 가치가 충분하다.
하효선
· 창원국제민주영화제 집행위원장
· 수석 프로그래머
· 씨네아트리좀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