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서 만나는 인문학] 오는 줄, 가는 줄

오후의 여행에 스민 생각 : 여행에서 만난 인문학 39화

2026-03-18     월간경남
두 개의 풍경이 아니라 하나의 풍경이다

 

저것이었구나, 각성의 거울!

벽 위쪽에 태극기 액자가 걸려 있고, 그 아래쪽 벽은 천장 가까이까지 거울로 덮여 있다. 거울 속에는 줄넘기를 하기 위해 서성대며 엄마 쪽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뒷모습과, 그 아이들을 바라보며 앉아 있는 엄마들의 앞모습이 함께 비쳐 있다. 
한쪽 벽면을 차지한 거울은 교실 속의 모든 모습을 집어삼키려는 듯,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다는 시선으로 우리를 붙들고 있다.

 

풍경은 그대로인데 다가가고 멀어지는 것은 나일 뿐
줄을 넘기 힘들면, 물보라 속에서 피어오르는 무지개 다리를 건너가볼까

 

“엄마, 나 다이어트할 거야,”

음악줄넘기 수업을 마치고 돌아온 아이가 결의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고작 6학년인 초등학생이 다이어트라니. 남의 눈에는 ‘뚱뚱’일지 모르나, 내 눈에는 조금 ‘통통’한 정도인데. 그리고 아직 키가 다 자라지도 않았는데 다이어트라니! 

“줄넘기를 하는데, 거울 속에 비치는 내가 다른 친구들보다 뚱뚱해.” 

전신거울은 아이와 친구를 한 화면에 올려놓고 말없이 대차대조표처럼 펼쳐 보였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비추는 거울을 통해 자신과 친구의 모습을 본 아이는 적잖이 충격을 받은 듯했다.
음악줄넘기 부모 참관 수업 초대를 받았다. 참관 수업의 내용은 두 아이가 양쪽에서 긴 줄을 돌리고, 아이들이 차례로 뛰어드는 단체 줄넘기였다.

“긴줄넘기에는 가는 줄과 오는 줄이 있습니다. 바닥을 치고 멀어지면 가는 줄, 바닥을 치고 가까워지면 오는 줄입니다.” 음악줄넘기 선생님은 긴줄넘기에 대한 설명을 이어나갔다. “가는 줄은 뛰지 않아도, 줄을 넘어가지 않아도 지나갈 수 있습니다. 이것을 출입법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오는 줄은 반드시 뛰어넘어야 합니다.”


두껍아 두껍아 하늘을 보아라

두껍아 두껍아 땅을 짚어라

두껍아 두껍아 뒤로 돌아라

두껍아 두껍아 나가 놀아라

 

땅을 치고 다가오는 줄처럼 훅 들어오는 풍경이다
줄을 돌리는 사람의 형상이다. 다 내게로 오라
우리 삶의 줄은 누가 돌릴까. 신일까, 나일까

 

하늘에서, 바닥에서…

운동장에서 흙먼지 폴폴 날리며, 짧은 줄넘기를 연결해 만든 긴 줄을 돌리며 놀던 기억이 떠올랐다. 
친구들이 돌리는 줄이 오는 줄인지, 가는 줄인지도 모른 채 냅다 줄을 향해 뛰어들었다. 

줄에 걸려 넘어지고 무릎이 까지며 놀았던 나와 달리, 내 아이는 전신거울 앞에서 줄의 방향을 살핀다. 아이들의 눈을 따라 나도 줄을 보았다. 

그날 이후 긴 줄은 내 안에서 계속 돌아가고 있다. 그리고, 초등학교 6학년이던 아이는 어느새 고등학교 1학년이 되었다. 
몸으로 익힌 긴줄넘기는 그저 줄 안으로 뛰어들기만 하면 되는 놀이였는데, 교실에서 말로 배운 긴줄넘기는 높은 파도가 되어 나를 덮친다. 

무섭다. 바닥을 친 줄이 멀어지는 것을 깨닫기도 전에 줄은 다시 허공에 떠 있다. 

바닥을 치고 멀어지는 줄은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가까이 다가오는 줄이라 착각하기 쉽다. 하늘에서 나를 향해 내려오던 줄은 바닥을 치고 내게서 멀어져간다. 

나에게서 멀어지는 줄은 뛰지 않아도, 줄을 넘지 않아도 지나갈 수 있다. 그냥 보내면 된다. 잡아도 흘러가고, 붙들어도 사라질 것들이니까.

반면 바닥을 치고 나에게 오는 줄은 반드시 뛰어넘어야 한다. 나에게 오는 줄로 뛰어들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중력을 거슬러 몸을 들어올려야 한다. 
비록 찰나의 시간일지라도 숨을 참고 발바닥에 힘을 주어야 한다.

 

땅을 치고 다가오는 줄은 뛰어 넘어야 한다
살다 보면 땅에서 뛰어오르는 순간이 필요하다
겉만 봐선 모른다. 거무튀튀한 성당 안에 저렇게 화려한 빛이 있을 줄이야

 

오는 줄을 향해…

누가 돌리는지 알 수 없는 긴줄은 때로는 오는 줄이 되고, 또 때로는 가는 줄이 된다. 세상은 이미 돌고 있다. 리듬을 모르면 줄에 걸린다. 

너무 서두르면 부딪히고, 망설이면 줄은 지나간다. 안전한 일상의 리듬에서는 몸을 들어 올릴 일이 많지 않다. 
안전하다는 이유로 영원히 가는 줄에만 뛰어드는 삶은 심심하다. 오는 줄을 뛰어보지 않은 사람은 공중에 떠 있는 감각을 모른다. 

어쩌면, 낯선 도시에서 길을 잃고 휴대폰 배터리가 꺼지던 날, 읽지 못한 메뉴를 주문해 느끼한 음식을 앞에 두고 망설이던 순간, 잘못 결제한 1박 100만 원짜리 방을 취소하려 진땀을 빼던 시간이 내가 마주한 오는 줄이었는지도 모른다.

딸은, 음악줄넘기 교실의 거울에서 자기에게 ‘오는 줄’을 보았다. 오는 줄은 뛰어드는 타이밍이 중요하다. 
누군가 “지금이야”라고 말을 해줄 수는 있으나, 몸을 들어 올리는 일은 대신 해줄 수 없다. 거울 속의 자신을 본 순간 딸은 오는 줄을 향해 뛰었다. 등산부에 들어가고, 유튜브를 보며 운동을 시작했고, 샐러드와 닭가슴살을 먹기 시작했다. 내가 걸려 넘어진 줄을 아이는 뛰어넘었다. 

몸을 들어 올리며 아주 짧게 공중에 머무는 순간이 두려움이 아니라 자유에 더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된 아이는, 또 다른 오는 줄 앞에 설 것이다. 

3월은 오는 줄의 계절이다. 여린 새싹은 딱딱한 나무껍질을 밀어 올리며 땅 위로 솟는다. 이 땅의 아이들은 또한 새 학년의 문 앞에서 낯섦과 설렘 사이에 선다. 교실이 바뀌고, 학교가 바뀌고, 친구가 바뀐다. 줄이 바닥을 치며 가까워지면 결국 몸을 들어올려야 한다. 피하고 싶어도 한 번은 건너야 하는 줄이다. 

이제 집을 떠나는 내 아이도 또 하나의 오는 줄을 향해 선다. 그리고 그 짧은 공중의 시간을 지나, 자유에 조금 더 가까워질 것이다.

 

아래와 위의 개념이 무너지는 살라르 데 우유니
바람따라 움직이는 구름으로 가까웠다 멀어지는 풍경들
위와 아래의 경계가 허물어져 하나가 된 풍경이 화살촉이 되어 경계를 뚫고 지나간다
이곳의 주도권은 자연이 쥐고 있다

 

두려움이 아닌 자유로…

줄은 아이들 앞에서만 도는 것이 아니다. 어느 날부터 병원 대기실에서, 건강검진 결과지 위에서, 낯선 약 이름 앞에서 줄이 바닥을 치기 시작한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통증과, 피하고 싶던 병명이 내 이름과 나란히 놓이는 순간, 예전 같지 않은 회복 속도는 이제 나에게 주어진 오는 줄이다. 

뛰지 않는다고 사라지지 않고, 외면한다고 멈추지도 않는다. 다시 한번 몸을 들어 올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예전처럼 높이 뛰어, 또 다른 세계로 가기 위해서가 아니다. 지금 이곳에 조금 더 오래 서 있기 위해, 조심스럽게 뛰어야 한다.

줄은 멈추지 않는다. 
누가 돌리는지 알 수 없지만,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줄이 만드는 바람소리를 듣는다. 
아이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뛰고, 나는 오래 머물기 위해 뛴다. 방향은 달라도 몸을 들어올리는 순간의 감각은 닮아 있다. 

머리칼이 날리며 스치듯 지나가는 짧은 공중의 시간, 그 잠깐의 비어 있음이 우리가 딛고 있는 땅이 얼마나 단단한지 알게 한다. 오는 줄은 늘 위협적으로 느껴지지만, 한 번은 뛰어야 알 수 있다. 그 순간이 두려움이 아니라 자유에 더 가깝다는 것을.
자신에게 오는 줄을 뛰어넘을 수 있는 아이는, 이제 나에게서 멀어지는 줄이다. 멀어지는 줄은 자연스럽게 지나가야 한다.

 

강주혜

글·사진 강주혜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