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ip in 경남] 밀양 달팽이전망대서 위양지까지

[도희주의 반차 여행] 한파의 껍질 벗고… 春바람 난 冬장군

2026-03-18     월간경남

겨울 끝자락 낙동강 가로질러 밀양서 봄 마중
밀양강·시가지 한눈에 담는 달팽이전망대
다섯 개 섬과 선비 기품 오롯이 품은 위양지
못 위에 떠 있는 한폭의 산수화 같은 완재정
나그네 발길 붙잡으며 아름다운 절경 뽐내

입춘 지난 걸 실감하라는 듯 매화 소식이 들려온다. 북극 한파로 겹겹의 롤러코스터를 타던 추위가 자작나무처럼 한두 겹씩 한파의 껍데기를 벗겨낸다. 연못과 개천에 꽁꽁 얼었던 얼음판. 한낮의 태양이 녹이지만 밤이면 다시 얼어붙는다. 그렇지만 얼마 남지 않았다. 이미 낮 기온은 봄을 부르고 얼음 다 녹을 즈음이면 가지 끝에서 연두색 봄이 머리를 내밀 것이다. 위양지 물가에 서니 아직은 투명한 얼음판 위에 겨울이 웅크리고 있다. 그래도 따사로운 낮 햇살은 천천히 다가오는 봄을 체감한다. 점점 빨라질 것이다. 라르고에서 안단테로.

 

완재정으로 가는 길

 

뒤따르는 상념은 과감히 내려놓자

추위가 한풀 꺾였다지만 실내에서 밖으로 나오면 아직은 입김이 훌훌 나와 흩어진다. 그렇지만 봄이 오고 슬슬 따뜻해지면 떠나는 겨울이 아쉬울 것이다. 겨울의 끝자락을 따라간다.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하고 출발. 수산대교를 지난다.

낙동강을 가로지르는 1.48㎞의 비교적 장대교량이다. 왼쪽 저만치 수산교 교각이 원근감으로 조형물처럼 보인다. 오른쪽엔 지류가 만든 둔치로 낙동강이 복주머니 형상이다. 편도 2차로의 밀양대로를 달리며 주변 들녘의 민낯을 스캔한다. 
곳곳의 농로는 반듯하다. 그리고 아직은 한산하다. 농로의 소실점은 산자락에 닿거나 외딴 민가에 닿는다. 조만간 농로엔 경운기나 트럭이 오가며 봄 고유의 빛으로 들녘을 물들일 것이다.
나그네가 출발지에 던져두었다고 생각한 상념들이 뒤따라온다. 
벌써 2월, 계획과는 다르게 자꾸 틀어지고 적체되는 일들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거 떨치려고 차에 시동을 걸었는데, 이건 아니다. 사소한 갈등은 잠시 보류하는 게 현명하다. 
마음을 다잡는 동안 중앙로에 접어들었다. 도로변에 밀집한 상가의 상호를 읽는 재미에 혼자 싱긋 웃는다. 대부분 상호만으로 업종을 가늠할 수 있으나 이색적인 상호가 눈길을 끈다. 윷모횟집, 물듦PAINT, 9ONE cafe 등. 나도 모르게 슬슬 흥이 돋기 시작한다. 그렇지. 즐거워야 여행이지.

밀양소방서 가곡119안전센터 근처 지하차도. 짧은 구간이지만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밀양’의 캐치프레이즈가 오늘 나그네 동선을 미리 말해주는 듯하다.

밀양 시가지를 조망하는 달팽이전망대

 

지그재그 잔도를 올라 달팽이전망대에 서다

첫 목적지 달팽이전망대가 있는 용두산(129.5m). 주차공간 앞에 최근에 지은 듯한 카페 전용 건물이 산을 반쯤 가리고 있다. 대형 카페 ‘이른, 봄’은 산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을 겨냥한 쉼터 같다. 얼핏 보니 1월 31일 개업 펼침막이 내걸렸다. 카페 옆 단장이 잘된 계단을 오르자 성벽 같은 생태계 터널이 드러났다. ‘산불조심’을 당부하고, 밀양농산물을 뭉뚱그려 맛을 자랑하는 펼침막, 최근 이곳의 명물 ‘달팽이전망대’ 이미지까지.

야자매트와 가로등

오른쪽. 야자 매트가 길 안내를 자처한다. 일정한 간격을 둔 가로등엔 용두산에 서식하는 야생동물 큰오색딱따구리·삵·다람쥐 등의 이미지가 친근감을 더해준다. 걸음을 더할수록 심신이 훈훈해진다. 잠시 후 잔도(棧道)의 시작이다. 그러나 험한 벼랑이나 비탈길에 선반처럼 달아낸 길, 덱 로드와는 동선이 독특하다. 산허리 따라 이어지다가 용두산 지형을 활용해 지그재그로 이어진다. 마치 허공을 걷는 듯하다. 가파르지 않고 누구나 부담 없이 달팽이처럼 걸을 수 있는 뜻을 담아 작명했다고 한다. 평일임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마치 무빙워크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잔도의 전경을 사진 한 장에 담기엔 역부족이다. 추위에 아랑곳없이 이미 전망대에 오른 사람들과 오르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용두산 허리 따라 이어지는 지그재그 잔도

전망대는 나선형의 3층 철제구조물이다. 숲과 흙을 배경으로 은빛으로 빛나는 데다 우주선으로 올라가는 계단처럼 보인다. 전망대에 서니 영화처럼 우주에 온 것 같은 기분이다. 발아래 보이는 밀양 시가지가 밀양강을 중심으로 반으로 나뉘어 있다. 왼쪽은 빽빽한 아파트단지가 들어서 있고 오른쪽은 전형적 농촌으로 논과 밭 그리고 비닐하우스가 길게 늘어서 있다. 사람 살아가는 모습이 이렇게 정확히 나뉠 수 있다는 게 자못 신기하다. 왼쪽 주민들과 오른쪽 주민들은 서로를 어떻게 생각할까. 아파트 주민들은 느리게 흘러가는 농촌의 시간 흐름이 갑갑할 것 같다. 농촌 주민들은 빠르게 흐르는 도시의 시간을 숨 막힌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달팽이전망대에서 바라본 밀양강과 밀양 시가지. 360도 파노라마 뷰가 봄을 재촉한다

때마침 밀양강 철교 위로 미니어처 같은 KTX가 지나간다. 단숨에 도시와 농촌을 한 줄의 객차가 연결한다. 잠시 엉뚱한 생각을 했다. 도시든 농촌이든 하루하루 주어진 삶에 충실할 뿐일 텐데 나그네 머리가 복잡하다 보니 망상이 끼어든다. 밀양강과 밀양 시가지가 360도 파노라마 뷰로 한눈에 든다. 아파트와 비닐하우스와 밀양강 둔치에 뿌리내린 나목들과 불룩불룩한 덤불들까지. 달팽이전망대는 밀양의 새로운 명소가 될 것 같다.


위양지와 완재정 가는 길

용두교를 지나 밀양강을 왼쪽에 낀 밀양삼문로. 나목의 계절에 나목의 터널을 지난다. 지난해 이곳을 지나며 보았던 벚꽃 터널이 떠오른다. 삼문동은 육지 속의 섬이다. 단순한 섬이 아니다. 낙동강 지류인 밀양강이 오랜 시간 강물로 깎고 다듬어 만든 명품이다. 
무려 2.93㎢의 면적이다. 나그네 주소지 부근 행정동에 견준다면 용지동(용호동, 신월동, 토월동)의 면적이 2.76㎢이다. 그러고도 경남도청의 면적이 하나 더 있는 셈이다. 밀양강이 휘돌아나가면서 만든 삼문동은 서울의 여의도 격이다.
삼문동을 지나 밀양대로. 내비게이션은 부북면 창밀로를 안내하고 있다. 춘화삼거리에서 위양리·춘화농공단지 방면으로 우회전이다.

위양로. 눈앞에는 새로운 산이 다가오고 좌우의 산들은 멀어져 간다. 편도 1차로 좌우 대규모 비닐하우스는 아마 스마트팜으로 농가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있을 것이다. 위양버스정류장이 삼거리의 분기점이다. 오른쪽 내양마을로 접어든다. 멀리서 다가오는 화악산(華岳山). 산 이름에 ‘악(岳)’ 자가 있으면 악산(惡山)으로 정평이 있다. 화악산(931.5 m)은 재약산, 종남산과 더불어 밀양의 3대 산으로서 주산(主山)이기도 하다. 
밀양 청도와 경북 청도군에 걸쳐 주능선이 7㎞나 된다.

 

밀양 위양지에 있는 ‘완재정’. 호수와 어우러진 정자의 모습이 마치 한 폭의 산수화 같다


완연히 떠 있는 정자, 완재정의 겨울 표본

위양마을 표석에 이어 ‘위양지’ 이정표가 도착을 예고한다. 이윽고 위양지 주차장에 도착했다. 입구엔 ‘鶴山先生權公遺墟碑(학산선생권공유허비)’가 학산 선생의 역사적 흔적을 담고 있다. 위양지(位良池). 약 6만2700㎡에 다섯 개의 섬이 있다. 족히 400~500년 이상의 수령으로 돼 보이는 나무들마다 이름표와 QR코드가 표기된 꼬리표가 달렸다. 1㎞의 타원형 구간엔 느티나무, 말채나무, 소나무, 서어나무, 아까시나무, 팽나무, 왕버들 등이 위양지를 엄호하고 있는 형상이다.

근엄한 선비의 풍채를 닮은 위양지의 팽나무

많은 노거수 중 한 그루는 세월의 무게를 담고 위양지 수면을 바라고 있는데 그 모습이 근엄한 선비의 풍채를 그대로 닮아 있다. 학산 선생 영혼이 깃들어 있지 않을까,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수면은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하고 완재정 가까이엔 아직도 얼음이 드문드문 떠 있다. 물 건너 ‘완재정’을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밀고 당기며 셔터를 누른다. 나뭇가지의 반영으로 호수는 한 폭의 흑백 문인화다. 나뭇잎이 없어 오히려 깔끔하고 담백한 호수의 문인화는 그늘진 곳엔 그라데이션 농도가 더 짙다.
‘완재정’을 잇는 구름다리 앞 왕버들 실가지들을 바람이 휘적인다. 구름다리 건너 왼쪽엔 ‘학산정사’가 있다. 학산 선생이 임진왜란(1592년) 때 일본에 포로로 끌려갔다가 돌아와 1604년 후학양성을 위해 지은 공간이다. 지금은 문중 행사 때 활용하며 일반인에겐 개방하지 않는다. 처음엔 배로 드나들었으나 후대에 칠암교(七岩橋)를 놓았다고 한다.
칠암교 앞엔 ‘陽良 七岩橋’라 새겨진 작은 표석이 있다. 이를 미루어 ‘위양지(位良池)’의 첫 이름은 ‘양양지(陽良池)’였음을 알 수 있다. 학산 선생은 위양지 다섯 개의 섬 중에서 제일 큰 섬에 작은 공간을 꿈꾸었으나 생전에 실현하지 못했다. 이를 안타깝게 여겨 후손들이 1900년에 건립한 공간이 지금의 완재정(宛在亭)이다. 완재정은 못 안에 완연히 떠 있는 정자를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완재정
완재정 문밖으로 보이는 위양지

위양지에서 제일 큰 섬에 그림처럼 지어진 완재정은 소박하다. 완재정을 앵글에 오롯이 담기엔 마당이 너무 좁다. 담장에 정오의 그림자처럼 바짝 붙어 간신히 완전체를 담는다. 

후손들이 학산 선생 생전의 유지를 추모해 건립한 이곳에서 위양지의 사계를 보며 여생을 보냈을 의미를 담지 않았을까. 마루에 앉아 작은 뒷문 사이로 위양지 한 조각을 음미해 본다. 주차장 건너 위양지의 사계 사진을 보면 사계절마다 다시 찾고 싶다. 봄이 오면 위양지는 순백의 이팝나무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 밀양 팔경의 하나임을 증명할 것이다.

학산 선생의 역사적 흔적을 담은 유허비

 

여행 Tip

▶ 용두산 달팽이전망대
밀양시 가곡동 산87-28번지 일대. 2020년부터 구도심 재생사업 일환으로 추진해 2025년 7월 말에 개통됐다. 주차는 용궁사 일대나 용궁사 주차장을 재량껏 활용할 수 있으며 주말엔 밀양강 둔치 주차장(밀양시 용평동 206-12)을 이용할 수 있다. 영남루에서 금시당까지 5㎞ 남짓 잔도가 이어지며 달팽이전망대의 330m 구간은 잔도의 핵심 구간이다.

▶ 위양지
밀양시 부북면 위양리 279-2번지 일대. 통일신라시대 때 ‘선량한 백성을 위해 조성한 못(位良池)’으로 통용되며 경남문화재자료 제167호로 지정됐다. 학산 권삼변(權三變, 1577~1645) 선생은 안동권씨로서 후손들이 위양마을에 자리 잡은 입향조(처음 들어온 조상)라고 한다.

도희주

글·사진 도희주 동화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