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寫] 순백의 대리석에 새겨진 아랍의 지성, 아부다비 ‘카사르 알 와탄’
전강용 기자의 사진세상
사막의 태양이 빚어낸 순백의 위엄
아부다비의 푸른 해안선을 따라 달리다 보면, 현대적인 고층 빌딩 숲 사이로 홀연히 나타나는 눈부신 건축물이 있다. 아랍에미리트(UAE)의 실제 집무 궁전인 ‘카사르 알 와탄(Qasr Al Watan)’이다. ‘국가의 궁전’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곳은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한 국가의 통치 철학과 아랍 문명의 정수를 응축해 놓은 성소와도 같다.
궁전 입구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압도된 것은 색채의 절제미였다.
사막의 태양 빛을 반사하며 빛나는 순백의 대리석과 화강암 외관은 화려한 금빛으로 치장된 여타 건축물과는 다른 고귀한 위엄을 뿜어낸다. 정교하게 가꾸어진 정원과 대칭을 이루는 웅장한 아치문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옷깃을 여미게 만든다.
귀국길에 마주한 전율, 역사의 현장이 되다
사실 이번 방문이 나에게 유독 특별한 기억으로 남은 이유는 여행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온 직후 들려온 소식 때문이었다. 내가 궁전의 광활한 회랑을 걷고 내부의 정교함에 감탄했던 바로 그 자리에, 정확히 일주일 뒤 대한민국 대통령이 국빈 방문을 한 것이다.
2025년 11월, 화면 속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하얀 UAE 대통령과 함께 걷던 하얀 대리석 광장, 그리고 양국 정상이 ‘100년 동행’의 파트너십을 약속했던 회의장은 불과 며칠 전 필자가 직접 발을 딛고 숨 쉬었던 공간들이었다. 내가 스치듯 지나쳤던 기둥과 천장의 문양들이 국가적 대업의 배경이 되었다는 사실은, 평범했던 여행의 기억을 ‘역사의 현장을 미리 가본 경험’으로 격상시켜 주었다.
기하학의 소우주와 지혜의 보고
궁전 내부의 백미는 단연 중앙의 ‘그레이트 홀(Great Hall)’이다. 높이 60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돔 천장은 아랍 전통 문양이 정교하게 수놓아져 마치 거대한 우주를 마주하는 기분을 선사한다. 실내를 장식한 22K 금박은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과 만나 은은하면서도 깊이 있는 황금빛을 발산한다. 특히 홀 사방에 배치된 거대한 거울 연못은 천장의 돔을 바닥으로 투영시켜 공간을 수직으로 무한히 확장하는 몽환적인 시각적 경험을 제공한다.
이어지는 ‘지식의 집(House of Knowledge)’은 아랍 문명이 인류에게 선사한 방대한 유산을 집약해 놓았다. 고대 지도와 희귀 사본들을 지나면 이곳의 상징인 황금빛 조형물 ‘지식의 빛’을 마주하게 된다. 아랍어 서체를 예술로 승화시킨 이 거대한 구형 조형물 안에서 하늘을 바라보면, 이 궁전이 지향하는 가치가 단순한 권력이 아닌 ‘지혜의 공유’에 있음을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세계의 호의가 모인 ‘국빈 선물’ 전시관
복도를 따라 걷다 보면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아주 특별한 공간이 나타난다. 세계 각국 정상들이 UAE에 전해온 진귀한 유물들이 전시된 ‘국빈 선물(Presidential Gifts)’ 전시관이다. 화려한 보석으로 장식된 단검부터 각 나라의 장인 정신이 깃든 공예품들까지, 이곳은 UAE가 전 세계와 맺고 있는 우호 관계의 깊이를 보여주는 외교적 박물관이다. 일주일 뒤면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전달될 또 다른 우정의 상징이 이곳에 놓이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한국인으로서 묘한 자부심이 일었다.
우정의 이정표가 된 궁전
관람의 마지막 코스인 ‘협력의 정신(Spirit of Collaboration)’ 홀은 실제 국빈 만찬과 정상회담이 열리는 곳이다. 일주일 뒤 이곳에서 양국 정상이 마주 앉아 국가의 미래를 논의했을 장면을 상상해 보았다.
까스르 알 와탄은 과거의 유물을 보존하는 박물관이 아니라, 매일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는 살아있는 공간이다. 필자가 걸었던 그 순백의 복도 위로 국빈의 발길이 이어지고 양국의 우정이 깊어졌듯, 이 궁전은 앞으로도 세계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할 것이다. 화려한 장식 뒤에 숨겨진 아랍인의 관용과 지혜를 경험한 이번 방문은, 국빈 방문 소식과 어우러져 필자의 가슴속에 잊지 못할 기록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