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효선의 씨네아트] 다잉(Dying)
“음악을 연주하는 순간 속에 희망이 있어요”
드라마 | 독일 | 182분 | 2025년 12월 10일 개봉 | 15세 이상 관람가 감독 | 매티아스 글래스너 Matthias Glasner
출연 | 라르스 아이딩어, 코린나 하르포히, 한스-우에 바우어, 릴리트 슈탕겐베르크 외
수입·배급 | 판시네마㈜
줄거리
가족이란 이름으로 묶였지만, 오랫동안 가족일 수 없던 사람들. 죽음이 가까워지자, 그들은 다시 가족이 된다.
오케스트라 지휘자 톰은 ‘죽음(Dying)’이라는 교향곡을 준비한다. 곁에는 기억을 잃은 아버지, 병마에 지쳐가는 어머니, 사랑과 술에 빠져 방황하는 여동생, 죽음만을 꿈꾸는 작곡가 친구가 있다.
그는 하루하루 음악을 붙잡으며 삶과 죽음 사이에서 흔들리는 이들을 마주한다. 그리고 마침내, 교향곡 ‘죽음’을 지휘를 마무리하는 순간, 톰의 삶에도 작은 변화가 깃든다.
삶과 죽음이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이야기
<다잉 Dying>은 단순히 죽음을 다루는 영화가 아니라, 삶을 깊이 관찰하는 드라마다. 독일 감독 매티아스 글래스너는 3시간 가까운 러닝타임 동안 삶과 죽음의 흐름을 절제된 방식으로 따라간다.
루니스 가족이 겪는 상실과 갈등은 너무 현실적이고 자연스러워 관객의 감정이입을 탁월하게 이끌어 간다. 영화는 무겁지만 결코 우울하기만 하지 않고, 곳곳에 블랙 코미디적 아이러니가 살아 있다. 한편, 죽음을 바라보는 여러 시선이 교차하며 관객에게 사색의 시간을 주어 이 서사가 우리 삶에도 닿아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영화는 우리에게 묘한 일체감까지 느끼게 한다.
배우들의 압도적인 연기력이 만들어낸 몰입감
병든 어머니 리시를 섬세하면서도 강렬하게 연기한 코린나 하루푸히는 독일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으며 또한 치매로 혼란스러운 아버지를 뛰어나게 표현한 한스-우에 바우어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릴리트 슈탕겐베르크가 연기한 여동생 엘렌의 알코올중독과 위험한 사랑은 주변을 무너뜨리는 데 완벽한 역할을 하고 주인공 라르스 아이딩어는 지휘자 톰의 불안정한 감정과 예술적 열망을 완벽히 담아냈다.
이들의 연기는 실제 가족을 보는 듯한 현실감을 만들어 준다. 표정 하나, 한숨 하나까지 의미가 느껴지고 어떤 장면에서는 말이 없어도 감정이 그대로 전달된다. 배우들의 존재감만으로도 이 영화를 볼 이유는 충분하다.
시각적 언어로 감정을 전달하는 뛰어난 영상미
영화의 촬영은 넓고 고요한 프레임을 활용해 가족들 사이의 거리감과 고독을 눈에 보이게 만든다. 카메라가 과도하게 움직이지 않아 인물의 감정이 화면 속에서 더 큰 울림을 가진다. 감독은 낮은 채도의 색감을 통해 삶의 무게를 표현하면서도 순간적인 따뜻함을 놓치지 않는다. 한 장면 한 장면이 사진처럼 기억에 남을 만큼 조용하고 강렬하다. 정적인 구성은 관객이 인물의 내면을 더 깊이 바라보도록 한다. 이 영상미 덕분에 영화의 서정성은 배가되어 보고 있는 동안 눈으로 느끼는 감정의 깊이가 점점 진해진다.
소리와 음악이 만들어내는 감정의 파동
<다잉>에서 음악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서사의 중요한 축이다. 톰이 지휘하는 교향곡 “Dying”은 죽음과 삶을 상징적으로 연결하는 핵심 요소다. 음악이 클라이맥스를 덮어버리는 대신, 침묵과 작은 소리들이 감정을 서서히 끌어올려 발걸음, 숨소리 같은 일상의 소리마저 감정적 도구로 변해 버린다. 이 섬세한 사운드 디자인은 관객이 감정 흐름에 완전히 잠기도록 만들며 음악이 큰 감정을 터뜨리는 순간, 영화 전체의 의미가 한 번에 연결된다. 영화를 보는 동안 귀로 느끼는 감정의 울림이 계속 이어진다.
가족 관계를 깊이 파고드는 서사적 완성도
이 영화의 가장 큰 힘은 ‘완벽하지 않은 가족’을 진실하게 그려낸다는 점이다. 루니스 가족 구성원들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받지만, 영화는 그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갈등과 상처, 재회와 용서가 복잡하게 얽혀 현실적이면서도 공감되게 펼쳐진다. 관객은 이 가족을 통해 자신의 가족, 자신의 관계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영화가 단순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 점은 오히려 더 큰 공감을 주며 <다잉>의 서사는 인간관계의 깊은 층위까지 도달하며 감정적 울림을 남겨 이 가족을 따라가는 여정 자체가 관객에게 의미 있는 체험이 되게 한다.
하효선
· 창원국제민주영화제 집행위원장
· 수석 프로그래머
· 씨네아트리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