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효선의 씨네아트] 그저 사고였을 뿐
액션, 범죄, 드라마 | 이란 | 103분 | 2025년 10월 1일 개봉 | 15세 이상 관람가
감독 | 자파르 파나히 Jafar Panahi 출연 | 바히드 모바셰리, 마리암 아프사리, 에브라힘 아지지, 하디스 하크바텐, 마지드 파나히 외 수입·배급 | 그린나래미디어㈜
줄거리
어느 날, 나를 지옥으로 이끌던 삐걱 소리가 다시 들렸다. 분명 그놈이다. 하지만 만약에 아니라면? “그저 사고였을 뿐? 누군가는 그걸 평생 기억해”
사고로 시작된 이야기
이 영화는 밤길에 한 가족이 개를 치는 ‘단순한 사고’에서 시작한다. 아버지 에그발은 임신한 아내와 어린 딸을 태우고 어두운 길을 달리다 우연히 사고를 내고, 차가 고장 난 뒤 인근의 한 수리공장으로 차를 몰고 들어가게 된다. 그 ‘단순한 사고’가 곧이어 과거의 폭력과 얽히면서 사소해 보였던 사건이 거대한 분노, 복수, 도덕적 딜레마의 서사로 전환된다. 이처럼 영화는 일상적이고 우연처럼 보이는 사건이 사실은 심층적이고 제도적인 폭력의 서막이 될 수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복수와 진실 사이에서
수리공장 주인 바히드는 이 차량의 운전자가 자신이 옛날 감옥에서 고문했던 인물이라고 의심한다. 그는 단서로서 운전자의 의족 소리 등을 듣고 행동을 개시한다. 바히드는 이 운전자를 납치해 자신의 과거 피해자 몇 명을 끌어모아 “이 사람이 정말 그놈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다양한 피해자들이 각자의 분노와 기억을 토대로 대응한다. 영화는 여기서 복수의 정당성, 진실 확인의 불확실성, 트라우마의 잔여 등을 복잡하게 엮으면서, 단순한 ‘응징’이 과연 ‘해답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미학과 연출 방식
감독 Jafar Panahi는 그의 특징적인 핸드헬드 촬영, 은밀한 제작 조건, 그리고 제한된 예산 속에서 이 영화를 완성했다. 2025년 칸영화제 최고상인 팔머도어(Palm d’Or)의 수상을 결정한 심사위원들이 이 영화를 높이 평가한 한 지점은 바로 ‘제약 속에서의 자유로운 표현’이다. 실제로 영화는 비허가 촬영으로 이루어졌고, 여성 배우들이 히잡을 벗고 등장하는 등 이란의 검열 체제를 정면으로 마주했다. 미학적으로는 차의 붉은 브레이크등만이 어둠 속에서 빛나는 첫 장면이나, 버스 안에서의 정지된 시퀀스 등이 영화가 갖고 있는 불안과 긴장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등 영화적 완성을 끌어올린 점 그리고 이야기 구조가 정치적 내용과 현실을 다루면서도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스릴러 장르의 틀을 빌려 관객몰입을 유도하면서도 도덕적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예술과 저항’이라는 칸영화제 전통과 작품이 맞물리며 강한 메시지를 남긴 것 등을 언급했다.
도덕적 질문과 관객의 역할
영화는 이러한 스릴러적 구조 속에서 끊임없이 묻는다. ‘우리는 진짜 가해자를 잡았는가?’, ‘복수는 치유가 될 수 있는가?’, ‘진실이 확실하지 않을 때 행동해도 되는가?’ 등. 그 과정에서 감독은 명확한 답을 제공하지 않는다. 오히려 각 인물이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과거와 맞서며, 관객 스스로에게 “만약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이 ‘관객 참여형 도덕극’으로서의 면모는 단순히 보고 끝나는 영화가 아니라, 나아가 내면적 성찰을 촉발하는 작품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우연이 아닌 구조 문제
제목 ‘It Was Just an Accident’는 표면적으로는 ‘그저 사고였을 뿐’이라는 의미처럼 보이지만,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우연으로 위장된 구조적 폭력과 억압이다. 이 작품은 단지 감독 개인의 이야기를 넘어, 이란 사회 그리고 더 나아가 억압된 현실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보편적 상황을 상징하게 되었다. 미학·정치성·관객 참여적 도덕성·제작 배경이 모두 맞물리면서 “왜 지금 이 영화인가?”라는 질문에 하나의 답이 되었다. 결국 이 영화는 ‘사고’로 출발했지만, 우리가 마주해야 할 더 깊은 사고(思考)를 던지는 작품으로 자리매김한다.
이란 영화의 미학과 구조
이란 영화는 흔히 ‘일상 속에서 인권과 존재를 묻는’ 미학을 갖고 있다. 이른바 이란 뉴웨이브, 이후의 신 이란 영화 운동이 보여주는 특징으로는 비전문 배우 사용·현장 촬영·간결하고 열려 있는 이야기 구조 등이 꼽힌다. 또한, 이란 영화는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과 비교되며 “일상과 허구의 경계를 흐리는” 스타일을 보인다. 특히 여성 문제, 어린이·노동 계층 같은 주변적 존재를 앞세우면서도 과장이나 상업적 멜로에 기대지 않고 내면적이고 윤리적인 질문을 던지는 경향이 있다. 이런 맥락에서 ‘사고’처럼 보이는 사건이 실제로는 구조적 억압이나 기억의 문제로 이어지는 서사가 이란 영화에서 자주 나타나는 특징이기도 하며 ‘그저 사고였을 뿐’은 다시 한번 이란 영화의 위력을 다져준 영화이다.
하효선
· 창원국제민주영화제 집행위원장
· 수석 프로그래머
· 씨네아트리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