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의 건축물 기행] 진주 지수면 ‘승산에 부자한옥’

과거·현재·미래… 한옥서 만나는 ‘시간의 겹’

2025-07-10     월간경남

고택 활용한 전통문화 체험 숙박 공간
마을 전체와 호흡하는 열린 구조 설계
안채 원형 보존… 대문채 등 리모델링
지역 역사성·건축적 정체성 고스란히

‘승산에 부자한옥’은 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승산길 45번길 16에 위치한 전통 한옥형 숙박시설로, 역사와 전통이 깃든 승산마을의 문화적 가치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공간이다. 승산마을은 LG와 GS 그룹의 창업주인 구인회 생가가 자리한 곳으로, 대한민국 기업가 정신의 뿌리를 간직한 역사적 장소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러한 역사성과 지역성을 바탕으로 마을 내 방치되어 있던 전통 한옥을 활용하여 과거의 정취와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새로운 숙박 공간으로 탈바꿈하였다. 기존 고택의 안채는 원형을 보존한 채 보수하고, 창고와 대문채 또한 기능과 용도에 맞게 리모델링하였다.
특히 철거되었던 사랑채는 지역 내 유사 사례를 바탕으로 복원, 전통 한옥의 공간 구성을 완전하게 되살려 입체적인 한옥 체험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실내는 한옥의 고유한 미감과 공간감을 살리면서도 현대적인 편의시설을 적절히 도입해 전통의 멋과 함께 쾌적한 숙박 환경을 동시에 제공한다. 방문객들에게 승산마을의 역사와 전통, 문화가 살아 숨 쉬는 특별한 체험을 선사하는 장소로 기능하면서 지역 고유의 건축문화와 정체성을 계승하고 재해석하고자 노력하였다.

 

‘승산에 부자한옥’ 전경.
‘승산에 부자한옥’ 전경.

 

설계 의도

승산마을은 오랜 세월 자연과 더불어 형성된 전통 한옥 집단 마을로, 지역의 역사성과 건축적 정체성이 고스란히 살아 숨 쉬는 공간이다. 이러한 장소에 새로운 건축을 더한다는 것은 단순한 신축을 넘어 축적된 시간성과 풍경 속에 섬세하게 참여하는 행위이며, 깊은 존중과 해석이 요구되는 작업이다. 설계는 ‘시간의 겹(Layers of Time)’이라는 개념을 통해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생활, 그리고 미래의 가능성이 중첩되는 건축적 층위를 구현하고자 했다. 전통 한옥의 건축 언어와 공간 구성 원리를 계승하되 현대의 기술과 생활 방식을 자연스럽게 수용함으로써 시간의 흐름을 한 건축 안에 응축하고자 했다.
새롭게 계획된 건물은 경남 지역 전통 마을이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해 온 건축 조직과 골목길의 흐름, 담장과 마당의 관계, 건물 간 거리감과 시선의 교차 등 공간적 문법을 세심히 분석한 뒤 그 위에 놓였다. 이를 통해 주변 환경과 시각적·공간적 연속성을 유지하면서도, 독자적인 해석을 더해 현대적 감각과 기능을 부여하였다. 특히 경남 지방의 전통적 채 구성과 이용자 중심의 공간 분할 방식을 현대 주거 프로그램에 맞게 재구성하고, 안마당을 중심으로 각 실이 자연스럽게 유기적 관계를 형성하도록 하여 일상 속에서 전통 공간의 흐름을 경험할 수 있도록 설계하였다.

‘승산에 부자한옥’ 전경.
안채 누마루에서 내려다본 마당

외관은 목재, 흙, 기와 등 전통 재료를 중심으로 구성해 마을의 외관과 조화를 이루면서도, 내구성과 단열 성능을 확보하기 위해 현대적 공법과 소재를 절충적으로 사용하였다. 내부는 전통 목구조 기법을 기반으로 하되 단열창 등 현대 재료를 적절히 조합하여 재료 간 대비와 깊이를 통해 시각적 다양성을 확보하고자 했다. 
이 건축은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니라 마을 전체와 호흡하는 열린 구조로 계획되었다. 기존의 창고는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공용 주방과 다목적 공간으로 재탄생하였으며, 시설이 숙박에만 국한되지 않고 식사와 소규모 공방, 전시, 커뮤니티 활동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될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객실과 취사, 마당, 지원시설 등 각 기능이 독립적으로 분산되어 있는 전통 건축의 특성을 살리면서 방문자가 공간을 순차적으로 체험하며 장소에 대한 감각을 깊이 있게 느낄 수 있도록 유도했다.

‘승산에 부자한옥’ 공용주방

‘승산에 부자한옥’은 과거의 형식을 단순히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마을이 축적해 온 건축 문법을 오늘의 감각으로 재해석하고 현대인의 삶의 요구와 기술을 반영함으로써 전통과 현대, 물성과 기억, 개인과 공동체가 공존하는 다층적인 공간을 제안한다. ‘시간의 겹’은 단절이 아닌 연결이며, 과거를 흉내 내는 재현이 아니라 맥락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진화다. 이 프로젝트는 건축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공간 속에 녹여내고, 마을의 정체성과 동시대의 삶을 유기적으로 연결함으로써 장소성과 현대성이 공존하는 건축적 응답이 되기를 지향한다.

 

승산마을 풍경


설계 및 시공 과정

이 프로젝트는 오랜 기간 문화유산 관련 조사와 연구를 수행해 온 설계자가 건축사 자격을 취득하고 사무소를 개설한 이후 처음으로 참여한 공공입찰에서 낙찰된 뜻깊은 설계 작업이다.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 있는 결과였지만, 더욱이 전통 한옥을 주제로 한 작업이라는 점에서 개인적으로는 무척 반가운 일이었다. 20여 년간 경남 지역을 중심으로 문화유산과 관련된 다양한 실무와 학술조사를 수행하며 축적해 온 한옥에 대한 이해와 경험이 실질적인 설계로 이어질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화유산 조사와 건축 실무, 특히 실시설계는 서로 성격이 다른 분야이며, 그 차이는 곧바로 현장에서 마주하게 되었다. 육안으로 상태가 양호해 보이던 안채와 창고는 지붕 해체 과정에서 예상보다 심각한 구조적 손상이 확인되었고, 이미 철거된 사랑채는 마을 내에서 유사 사례를 찾아 비교하기도 쉽지 않았다. 대문채 역시 외관은 비교적 온전해 보였으나 구조 부재에 다양한 형태의 손상이 누적된 상태였다.
이에 따라 안채는 프로젝트의 시작이자 핵심 공간이므로 원형의 공간 구성과 물리적 흔적을 최대한 보존하되 구조적 안정성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보수하였다. 주요 구조 부재는 가능한 한 존치하고, 육안으로 확인되지 않는 보이지 않는 부분은 신재로 교체하여 전통성과 안전성을 동시에 확보하였다. 철거된 사랑채는 경남 남부지방의 전통 사랑채 구성과 승산마을의 공간 배치 사례를 종합적으로 참고하여 한쪽에 누마루를 두는 평면으로 재구성하여 신축하였다. 대문채는 건물군 내 위계상 상대적으로 낮은 비중을 갖기 때문에 신재를 적극 활용하였고, 창고는 향후 식당과 커뮤니티 공간 등으로의 활용을 고려하여 손상된 지붕 부재를 부분 교체하고, 원형 훼손을 최소화하는 선에서 보강 작업을 수행하였다. 안채가 외부에서 직접 보이지 않게 하는 전통 배치 방식은 마당에 안채를 가리는 낮고 짧은 전통 담장을 두고 사인보드로 활용하는 방식으로 상징하였다.
전통 건축의 틀 안에서 현대인의 거주 편의성을 확보하는 일은 가장 큰 도전 과제 중 하나였다. 기존 안채는 물론 신축되는 사랑채 역시 전통 한옥의 칸 크기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었으며, 현대적 위생 설비나 주방 기능을 수용하기엔 공간 제약이 컸다. 그러나 기능을 확보하기 위해 무리하게 건물 규모를 확대하거나 비례를 파괴하는 방식은 전통 한옥의 미감뿐 아니라 마을 전체의 경관 질서를 크게 해칠 우려가 있었다. 이에 따라 안채의 경우 기존 부엌을 방으로 개조하고 벽장을 털어 화장실로 구성하되 외부에서는 원형의 입면을 유지할 수 있도록 섬세하게 계획하였다. 사랑채는 신축 건물이지만 기존 한옥의 규모를 벗어나지 않도록 내·외부 공간 구성을 조절하였고, 창고는 지붕까지 시원하게 열린 단면으로 구성하여 내부 채광과 공간 활용도를 높이는 한편, 전면에 큰 창을 두어 다양한 용도에 대응할 수 있는 유연한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전통 마을의 기존 한옥을 리모델링하고, 새로운 건축을 덧입히는 일은 단순한 보존이나 재현의 문제를 넘어 기존의 질서에 귀 기울이면서도 새로운 건축의 언어를 설득력 있게 제시해야 하는 섬세한 작업이다. 이 프로젝트는 기존의 시간성과 마을 맥락을 존중하는 동시에 오늘의 삶을 담을 수 있는 기능성과 해석을 더함으로써 전통과 현대가 조화롭게 중첩되는 ‘시간의 겹(Layers of Time)’을 건축적으로 풀어낸 실천이었다. 시간은 축적이며, 건축은 그 시간의 결을 드러내는 가장 물리적인 언어다. 이 작은 프로젝트가 그러한 언어를 통해 마을의 내력과 오늘의 일상이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공간이 되기를 기대한다.

 

이용 정보

숙박 요금은 성수기(7월 1일~8월 31일)와 비수기에 따라 차이가 있으며, 객실은 안채와 사랑채에서 가능한데 청실(4인용 가족실)과 홍실(2인실)로 나누어져 있다. 예약은 진주시 통합예약시스템을 통해 가능하다. 자세한 사항은 해당 시스템에서 확인하면 된다.

 

세마루건축사사무소 송지환

설계  세마루건축사사무소 송지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