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효선의 씨네아트] 룸 넥스트 도어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죽음의 존엄성

2024-11-18     월간경남

드라마 | 미국 | 107분 | 2024년 10월 23일 개봉 | 15세 이상 관람가
감독 | 페드로 알모도바르    출연 | 틸다 스윈튼, 줄리안 무어    
원작 | 시그리드 누네즈    배급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줄거리

유명 작가인 ‘잉그리드’(줄리안 무어)는 오래전 잡지사에서 함께 일했던 절친한 친구 ‘마사’(틸다 스윈튼)가 암 투병 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찾아간다. 연락이 닿지 않았던 시간 동안의 안부를 묻고 서로가 처한 현재의 문제에 대해 진실한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 ‘마사’는 ‘잉그리드’에게 중요한 순간 자신의 곁에 있어 달라고 부탁하는데….

존엄사

‘나의 죽음을 내가 선택할 권리’, ‘고통으로부터 나를 해방시킬 권리’를 우리는 행사할 수 있는가의 문제, 그리고 병으로 인해 죽음을 앞둔 이가 고통 속에서 처참하게 그리고 나약하게 무너지는 것을 거부하고 생을 스스로 종결하려는 과정에서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존엄성에 대한 사회적 대응은 단순한 법적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태어남이 자기결정권이 아니듯이 결국 모든 이성과 사고의 훈련 속에서 성인의 시간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죽음의 존엄성을 개인이 선택할 수 없고 신의 영역에서 자연사만을 온전한 죽음으로 정의할 것을 강요받는다.

마사와 잉그리드

두 주인공 마사와 잉그리드는 1980년대 잡지사에서 같이 일했으나 한참 동안 뜸했던 친구 사이이다. 이후 마사는 종군기자로 전쟁터를 찾아 종횡무진했고 잉그리드는 새로 쓴 책이 베스트셀러로 성공한 작가이다. 즉, 둘은 충분한 사회적 성취와 지식을 보유한 60대 중년 여성이다. 한편 어린 나이에 딸을 출산하고 가족과 일의 적절한 화해를 놓쳐버린 마사는 딸이 타인보다 더 멀게 느껴진다고 한다. 잉그리드는 옛날 마사의 애인이었던 데미언을 현재의 애인으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는 환경주의자이다. 

그들의 재회

암에 걸린 마사와 마사를 병문안 온 잉그리드 사이에 여러 이야기가 오간다. 딸의 반응에 상처 입은 마사는 친구에게 딸과의 관계가 그렇게 흐른 사정 이야기를 쏟아내고, 잉그리드는 다음 작품 구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 사이에 에드워드 호퍼와 버지니아 울프가 오가고, 그리고 버스터 키튼의 ‘일곱 번의 기회’를 보며 웃고, 제임스 조이스 원작 ‘죽은 사람들’의 대사를 곱씹는다. 이들은 19세기 말에 태어나 20세기 초를 풍미했던 인물들로 당시 모더니즘의 지적 분위기가 만연하다. 
이야기가 무르익어 마사와 잉그리드는 마사의 딸과 딸의 생부를 떠나보낸 일 그리고 그가 이룬 새 가정과 생부의 죽음 등이 모두 생부의 베트남 참전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불행으로 점철된 이야기, 그리고 이 두 사람을 잇는 두 사람과 연결된 옛 그리고 현 연인으로부터 기후위기로 인한 팬데믹이 가져온 불행과 해결책이 없는 지구의 미래, 실제 전쟁터에서 경험한 동성애 수사의 러브스토리와 현재 마사의 암 투병도 전쟁터인 것 등등, 마치 매일 만나는 사람들처럼 이야기를 나눈다. 하지만 여전히 마사의 병실이고 마사의 여윈 몸은 힘에 겨운 상황이다.

옆방

마사는 여느 암 환자들처럼 여러 가지 처방에 몸을 맡겼으나 결국 간과 뼈까지 전이되어 곧 닥쳐올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이미 암에 걸린 사실을 알고부터 죽음을 생각했으나 여러 권유에 몸을 맡긴 걸 후회하는 중이다. 이제 확실하게 죽음을 계획하고 실현하고자 하며 이를 위해 ‘옆방’에 있어 줄 사람이 필요하다. 여러 사람들에게 요청하였으나 허락받을 수 없었다며 잉그리드에게 제안한다. 잉그리드는 동의자로 딱이다. 거절이 어려운 성격에다가 마지막까지 인간의 존엄을 지켜내려는 마사를 이해할 수 있는 지적 자질까지 있으니. 여성연대의 힘이라고 할까….

배우로 완성되는 영화

알모도바에게 배우는 영화를 완성시키는 가장 주된 요소이다. ‘룸 넥스트 도어’에서 틸다 스윈튼은 과거와 현재에 이르는 여러 감정을 죽음을 앞두고 토해내며 그녀의 역사를 송두리째 마치 건축하듯 쌓는다. 특히 마사의 삶에 대한 주체성, 즉 죽음의 선택은 이후 딸과의 화해를 낳는다. 즉 죽음은 끝이 아니라 이음이란 것을 딸의 분장으로 환생하는 느낌까지 준다. 게다가 이를 오롯이 엮어주는 친구 줄리안 무어는 극 전체의 입체감을 더해 준다.

하효선

하효선

· 창원국제민주영화제 집행위원장
· 수석 프로그래머
· 씨네아트리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