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의 건축물 기행] ‘맛’으로 느끼는 건축 17화
보는 맛, 걷는 맛, 쓰는 맛… 맛나는 건축
고대 로마의 건축가 비트로비우스는 구조, 기능, 미를 건축의 3요소로 설명하였다. 건축물은 튼튼함과 쓰임새, 아름다움을 두루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건축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 시민이 아름다움과 쓰임새에 대한 관점에서 어떻게 건축물을 감상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제안해 보려 한다.
건축물의 감상 포인트를 ‘맛’이라는 글자를 붙여 보면 어떨까. 세 가지 맛! 즉 ‘눈맛’과 ‘거니는 맛’, ‘쓰는 맛’이다. 미술관, 전시관으로 불리는 전시 용도의 건축물은 위에 언급한 세 가지 맛 중에서 ‘거니는 맛’이 좀 더 두드러진 건축물이라 할 수 있다. 전시 대상물을 감상하기 위한 공간적 이야기를 풀어서 만들어가기 때문이다.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
영천강변 물빛여울공원 내 위치
주변 동선 ‘ㄴ’자 건축물 접근 용이
주 출입구·로비 역할 ‘기둥마루’
아담한 전시 공간·2층 데크 눈길
먼저 소개할 건축물은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설계 차성민 건축사)이다. 이성자 화백(1918~2009)은 진주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주로 활동하였고 프랑스와 한국은 물론 세계 전역에 걸쳐 작가 지위를 인정받는 인물이다.
건축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먼저 입구를 찾아야 한다. 그런데 이성자미술관은 일반적인 건축물에 볼 수 있는 주 출입구로 보일 만한 커다란 현관을 찾을 수가 없다. 대신 기둥으로 건물을 받치고 그늘을 만든 ‘기둥마루’ 공간을 거쳐야 한다. 이 ‘기둥마루’ 공간은 공원의 높은 쪽보다는 3~4m 낮고 영천강 둔치 길보다는 약 2m 높은 중간 높이에 위치한다. 외부공간이지만 미술관의 주 출입구와 로비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외부 로비는 높은 쪽에서는 경사로 또는 계단을 가로질러 내려가야 하고, 낮은 둔치 길에서는 계단을 타고 올라와야 다다를 수 있는 중간 높이에 위치해 있다.
땅의 중간 높이에서 로비 역할을 하는 ‘기둥마루’의 적용은 적절한 건축적 제안으로 보인다. 먼저 주변의 다양한 동선이 건축물로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미술품을 관람하기 전의 적절한 전이공간(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움직이는 동안 발생하는 중간 지점)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고, 미술관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시민들에게도 개방되어 휴식공간을 제공하고 있으며 화장실은 항상 개방되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
전시실은 1층에 한 개와 2층에 두 개가 있다. 2층 두 전시실 사이에 외부로 통하는 문이 하나 있다. 설계자는 입구와 출구를 다르게 설계한 듯하며 2층의 문은 출구로 보인다. ‘기둥마루’를 통해 미술관으로 들어온 관람자가 전시를 돌아본 후 2층 데크로 나가 영천강의 풍경을 만끽하면서 관람을 마무리하도록 하는 설정이다. 하지만 보안상의 이유겠지만 2층 출구는 닫혀 있어 아쉬운 마음을 지울 수가 없다.
들어갔던 곳으로 다시 나와 미술관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본다. 연회색의 시멘트판과 투명한 유리로 마감된 단순한 형태는 목재 외부데크와 초록의 수목과 어우러져 시간이 흐를수록 그 멋을 더해갈 것이다.
진주남강유등전시관
소망진산 유등테마공원 내 자리
출입구 들어서면 공원 아래 땅 속
중정 2개·천장 1개 설치한 전시실
다채로운 동선과 공간감 뽐내
다음 방문할 건축물은 진주남강유등전시관(설계 이상흠 건축사)이다. 남강 유등은 임진왜란 때 유래하여 진주남강유등축제로 발전하였고, 10월에 열리는 축제는 대한민국 대표축제로 전국에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진주남강유등전시관은 유등을 상시 관람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2023년 개관하였다. 전시관은 소망진산의 유등테마공원 내에 위치한다. 소망진산은 진주성 서장대에서 볼 때 남강 너머 남서쪽으로 보이는 작은 산이다. 진주시는 이곳에 유등테마공원을 조성하면서 유등전시관을 함께 건축하였다.
정면에서 볼 때 땅에서 건축물이 수평으로 낮고 길게 뻗어 나온 듯 보인다. 외장마감은 회색의 화강석을 가로로 얇게 켜서 붙였다. 마치 땅속에서 수평으로 뻗어 나온 커다란 화강암에 얇은 틈이 생긴 듯한 인상을 받는다. 전면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가로로 길게 난 수평창의 주 출입구를 들어선다. 출입구를 들어서면 유등테마공원 아래 땅속이다. 출입구를 지나 홀 맞은편에 중정이 보인다. 이곳에 물을 담아 물고기 모양의 유등을 띄웠다. 중정으로 인해 어두울 수 있는 공간을 밝게 만들어 주어 땅속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같은 효과를 위해 전시관에는 2개의 중정과 1개의 커다란 천창도 설치했다. 덕분에 전시실마다 다채로운 공간감을 느낄 수 있다.
전시 동선은 출입구 홀에서부터 왼쪽에서 시계방향으로 돌아보게 되어 있다. 바닥의 높낮이의 변화, 전시 방식의 다양함, 밝음과 어두움의 차이, 수평적 너비와 수직적 높이(천장 높이)가 전시실마다 변화하며 짧지 않은 전시 동선의 경험이 지루하지 않게 해준다. 전시공간의 짜임이 잘 되어 있는 수준 높은 공간구성이다. 기획전시실에는 박봉기 작가의 작품 ‘호흡’이 전시되어 있다. 유등을 모티브로 하여 자연재료(대나무)와 빛으로 만든 고요하고 명상적인 분위기가 참 매력적이다.
전시를 다 둘러보았다면 중정 수공간으로 나와 옥상으로 올라가야 한다. 그 옛날 유등을 띄우던 남강을 바라볼 수 있는 장소로 향한다. 옥상에 오르니 전시실이 지하에 있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전면으로는 건축물이 길게 드러나 있었지만, 후면 강 쪽에서 볼 때는 땅속에 숨어 있다. 설계자가 강 쪽에서 보는 스카이라인에 건축물이 드러나지 않도록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지상에는 전시공간에 필요한 세 개의 육면체 돌출물만 드러나 있다. 작은 유리 상자는 전시실의 천창이고 중간 크기의 콘크리트 상자는 천장이 높은 전시실의 지붕이며, 가장 큰 유리 상자는 카페테리아(카페유등)이다. 유등테마공원을 한 바퀴 돌고 난 후 카페테리아의 전망 좋은 자리에 앉아 차와 함께 진주 경치를 즐기기에 제격인 곳이다.
진주시립 이성자미술관과 진주남강 유등전시관은 경사지를 활용하여 건축물의 ‘세 가지 맛’을 우리에게 느끼게 해주고 있다.
‘보는 맛’과 ‘쓰는 맛’도 좋지만, 전시 건축물로서 ‘거니는 맛’을 제대로 느끼게 해주는 좋은 건축물이라 소개하고 싶다.
글·사진 도원A&C건축사사무소 유재만 건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