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50에 배낭 메고 떠난 남미 가족 여행 26화
좋은 공기 속의 산책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160년이 넘은 ‘카페 토르토니’
“깜비오! 깜비오!”
깜비오(환전)를 속삭이는 아르헨티노는 계산기를 우리 앞에 내민다. 우리가 정해놓은 숫자를 내민 아르헨티노와 협상을 끝낸 우리는 그를 따라 간다. 긴장한 티를 내지 않으려 하나 우리 셋은 마치 첩보 영화를 찍는 배우들 마냥 주위를 경계하게 된다. 낯선 상가 사무실에 도착한 그는 그곳에 있는 다른 아르헨티노에게 우리를 넘기고 사무실을 나가버린다. 아주 잠시 대화를 나누고 그를 따라 이곳까지 왔을 뿐인데, 그에게 버림받는 느낌이다. 남편과 내가 환전을 하는 동안 우리의 어린 첩보 요원은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미국 돈 몇 장과 바꾼 아르헨티나의 돈 다발은 실로 엄청나다. 두 나라의 경제력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2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 화폐의 가치가 떨어져, 벽지 대신 돈을 벽지처럼 벽에 발랐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다. 어쩌면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주머니가 두둑해진 우리는 이제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즐기려 한다. 남미의 파리라 불리는 이 도시는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 즐기기에 충분하다. 부에노스아이레스 거리를 걷다 커피 생각이 나 1858년에 문을 열었다는 <카페 토르토니(Café Tortoni)>로 향한다. 카페 토르토니의 카푸치노와 딱딱한 추로스를 2020년의 감각으로 맛 평가를 할 수는 없다.
그저 코끝을 스치는 시나몬 향에 코를 킁킁거릴 수밖에. 160년이 넘는 시간은 카페 벽의 액자 속에 인화되어 걸려 있고, 깨어진 유리잔은 부주의의 상징이 아니라, 시간을 이겨낸 투지의 상징으로 다가온다. 100년이 채 되지 않는 인생의 잣대를 들이대니 이곳의 모든 것이 위대하다.
눈 사로잡는 거리의 랜드마크
부에노스아이레스 거리를 걷다 보면 도로와 빌딩이 그리는 1점 투시도의 소실점이 생기는 곳에 어김없이 보이는 조형물이 있다. 오벨리스코(Obelisco de Buenos Aires). 도시 4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광장 중앙에 세워진 오벨리스코는 어디서 바라보아도 그 존재감을 드러내며 도시의 랜드마크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오벨리스코를 뒤로하고 5월의 광장 방향으로 걷다 보면 돌기둥이 웅장함을 더하는 대성당이 나온다. 12사도를 상징한다는 12개의 큰 기둥과 아치가 그리스 신전을 연상시킨다. 남과 다르기에 우리를 끌어들인 대성당에서 우리는 잠시 휴식을 취한다. 성당 밖을 나오니 하얀색과 연한 푸른색이 조화를 이룬 아르헨티나 국기가 바람에 나부끼고 있고 그 뒤편으로 파스텔 톤의 분홍빛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카사 로사다(Casa Rosada). 분홍색의 집으로 불리는 대통령 궁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를 중심으로 산책하듯 다녀도 하루가 모자란다. 우리의 마무리는 늘 ‘여인의 다리’다. 우리가 여인의 다리를 오는 이유 중 하나는 각자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다.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남편의 시간이다. 남편은 카메라를 들고 나가고 아이는 나와 카페에서 보드 게임을 한다. 누군가 한 명은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하고, 그 중 누군가는 늘 나다.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이 소중하기에 불만은 없지만 공평하지는 않다. 우리의 DNA 속에 자리 잡은 유교 사상은 물리적인 시공간을 초월한다. 이를 극복하고자 투쟁할 용기가 없는 나는 ‘모성애’라는 비겁한 가면을 쓸 수밖에 없다.
여행자들과 즐기는 고기 파티
오늘 저녁은 게스트하우스 여행자들이 각출해 아사도(갈비에 소금을 뿌려 숯불에 구운 아르헨티나 전통 음식) 파티를 할 날이다. 부에노카사 사장님은 아침부터 화덕에 불을 피우고, 우리는 저녁의 파티를 기대하며 집을 나선다. 화덕에서 고기가 천천히 익어 갈 동안 여행자들은 각자의 여행을 즐긴다. 아사도의 고기를 이렇게 오랜 시간 익혀야 하는 줄 미처 몰랐다. 그저 숯불에 구워먹는 고기라 생각했다. 한 지역을 대표하는 무엇인가가 되기 위해서는 시간이라는 공과 그 나름의 의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사도를 통해 배운다.
숙소 중정에 아사도를 위한 테이블 세팅이 되어 있다. 작은 나무 도마 같은 앞 접시, 포크와 나이프, 토마토, 양파 등 각종 야채로 만든 샐러드. 테이블 옆 화로에는 화덕에서 하루 종일 속이 익은 고기들이 숯불의 불향을 입기 위해 누워 있다. 소고기, 닭고기, 곱창, 소시지 등 다양한 종류의 고기들이 푸짐하다. 말로만 듣던 티본 스테이크는 ‘T-bone’이 그대로 보인다. 음식 이름을 이렇게 직설적으로 짓다니!
남편과 나는 한국에서 너무 오래 살았나 보다. 쌈장과 생마늘, 김치 없이 고기를 먹기가 힘들다. 스테이크 한 조각을 채 다 먹지 못한다. 우리와 달리 젊은 친구들은 물 만난 고기처럼 아사도를 즐긴다. 하물며 민주도 우리보다 많은 양의 고기를 먹는다. 김치는 바라지도 않는다. 쌈장만 있어도 한 덩어리는 너끈히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아르헨티나에 오면 ‘하루에 세 끼’는 소고기를 먹어야 한다는데, 우리에겐 너무 힘든 과제다. 소고기를 사랑하는 이들에겐 천국인 아르헨티나다. 우리는? ‘줘도 못 먹냐?’란 비아냥을 듣기에 충분하다.
유명 무덤 ‘라 레콜레타 공동묘지’
남편은 경비아저씨에게 사정을 한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외곽에 위치한 판테온 산 이그나시오(Pantheon San Ignazio) 묘지 앞에서 한국에서 온 남자의 애원이 길어진다. 남편은 카메라를 들고 뛰어 간다. 카를로스 가르델 묘가 어디 있는지 알고 저렇게 뛰어가는 걸까? 그 어떤 여행 블로그에서도 본 적이 없는 이곳은 카를로스 가르델을 비롯한 탱고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이들의 묘가 있는 곳이라 한다. 탱고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만이 기억하는 묘지인가 보다. 남편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뛰어나오자 경비아저씨는 철문을 닫으신다. 남편은 경비아저씨를 향해 “Mucho Gracias!”를 반복한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땀으로 흠뻑 젖은 남편은 행복한 얼굴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온 여행자들이 찾는 묘지는 따로 있다. 라 레콜레타 공동묘지(Cemiterio de Recoleta)이다. ‘에비타’로 익숙한 에바 페론(Eva Peron)의 묘가 있어 유명세를 더한다. 묘지를 물청소하는 가족을 보니, 저들의 ‘벌초’는 저런 거란 생각에 배시시 웃음이 나온다. 레콜레타는 죽은자들의 도시 같기도 하고 조각 공원 같기도 하고 십자가들의 무덤 같기도 하다. 에바 페론의 묘 앞에는 추모객인지 관광객인지 구별할 수 없는 이들이 붐빈다.
새로 사귄 친구와의 헤어짐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민주는 친구를 사귀었다. 부에노카사 사장님의 아이가 민주랑 같은 나이다. 둘은 친구가 되자 어설픈 한국어와 스페인어로도 즐겁다. 두 아이를 위해 부에노스아이레스 근교의 티그레에 있는 워터파크로 나들이를 가는 날이다. 여행을 온 후 처음으로 온전히 아이를 위한 시간이다. 아이들 덕분에 어른들도 친구가 되었다. 옥상에서 삼겹살 파티를 하며 어른들은 소주를 마시고 아이들은 뛰어다니며 깔깔거린다. 한국 같다.
팔레르모에 있는 에어비앤비로 숙소를 옮기는 날이다. 아이들은 헤어지는 순간까지 게임을 하며 깔깔거린다. 민주는 가기 싫은 티를 낸다. 돈 몇 푼 아끼자고 숙소를 옮기는 것이 몹시 후회된다. 우리는 새로운 도시에 오면 한인 게스트 하우스에서 3일 정도 지내면서 정보를 얻고 한식에 대한 갈증을 해소한 뒤, 에어비앤비로 옮기고 있다. 한인 게스트하우스는 한식 조식을 제공하기에 에어비앤비나 외국인이 운영하는 도미토리에 비해 숙박비가 비싸기 때문이다. 민주 친구가 있을 줄 알았다면 에어비앤비를 예약하지 않았을텐데. 아이는 즐겁고 행복한 시간은 늘 짧고 빨리 지나간다는 것을 배우는 중이다.
이 여행의 저울추는 어디로 기울까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오면 스카이다이빙을 하리라 마음먹었다. 다른 지역에 비해 비교적 저렴한 비용이 불러온 다짐이다. 텔레비전에서 스카이다이빙 장면을 볼 때마다 내가 뛰어내리는 듯 오금이 저리던 기억이 난다. 이젠, 내가 직접 뛰어내린다. 민주는 자신도 도전하겠다며 두 주먹을 불끈 쥔다.
긴 기다림과 짧은 만남은 세트 메뉴처럼 붙어 다닌다. 스카이다이빙에는 세트 메뉴에 ‘심한 멀미 증상’이 선택 메뉴로 따라 나오는데, 나도 모르게 선택 메뉴를 눌러 버렸나 보다. 힘들다. 민주는 불끈 쥔 두 주먹을 펴고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이구아수 폭포에 이은 두 번째 좌절이라 눈물을 보이지는 않았다. 나는 나이가 많아서 힘들고, 너는 적어서 속상하구나!
산텔모 벼룩시장이 무척 마음에 들었던 우리는 또다시 산텔모로 향한다. 고작 두 번째 방문인데도 익숙한 듯 앞장서 걷는 아이는 마냥 즐겁다. 거리의 레스토랑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먹고 싶은 음료가 없다는 아이는 혼자 스타벅스로 간다. 꽤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아이가 오지 않는다. 레스토랑 웨이터가 아이의 행방을 물으며, 이곳이 안전해 보여도 ‘남미’임을 강조한다. 순간 안색이 변한 남편은 아이를 찾아 뛰어간다.
익숙함이 방심으로 바뀌는 것은 한 순간이다. 우리는 늘 경계의 모호함 속에서 길을 잃는다. 극단을 피하고 경계를 허무는 일들은 필요하나 쉽지 않다. 세상의 일들은 마치 저울의 추처럼 아주 작은 차이에도 한 쪽으로 기울어버리기 일쑤다. 어둠 속에서 지나가던 청년은 우리를 향해 손짓을 하며 소리를 지른다. “No China! Corona Virus!” 저 한마디가 여행자의 저울추를 흔들고 있다. 우리의 저울은 어디로 기울까? Go, Stop?
ㆍ글 강주혜
ㆍ사진 김정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