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50에 배낭 메고 떠난 남미 가족 여행 25화
스텝이 엉키면 그것이 탱고, 계획이 어긋나면 그것이 여행!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산텔모 시장서 본 탱고 거리공연
“과테말라~” “콜롬비아~” “이탈리아~”
자신의 나라 이름을 외치며 환호성을 지르는 여행자들. 그에 부응해 박수로 답하는 사람들.
“코리아~~~”라고 목청껏 외치고 싶으나 나와 아이는 열심히 박수만 치고 있다.
나의 조국이 부끄러운가? 아니지, 아니야. 결코 그런 건 아니야.
산텔모 시장에서 탱고 거리 공연을 하는 댄서들은 각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을 거리 공연장으로 이끌어 내기 위해 여행자들의 조국이 어디인지 묻는다. 여행자들은 조국의 명예라도 지키려는 듯 자신의 나라 이름이 불리면 당당히 나가서 춤을 추고, 축제를 즐긴다. 카리브 해의 요트 파티가 생각난다. 우리는 여전히 축제의 참가자가 아니라, 구경꾼을 자처하며 박수만 치고 있다.
작은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조악한 탱고 음악에 맞추어 탱고를 즐기는 사람들. 아무도 바라보지 않는 것처럼 춤을 추는 그들을, 바라본다. 우리는 그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충분히 즐겁고 행복하다. 춤추지 않고도 춤을 춘 듯 얼굴이 상기된다. 첫 탱고에 반해버린 우린 사랑에 빠진 듯 달아오른다.
색깔이 아름다운 도시 ‘라 보카’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라 보카’ 지역을 모티브로 만든 <라 보카>라는 보드게임이 있다. 여행을 떠나오기 전 아이와 게임을 하며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가면 ‘라 보카’에 가자고 이야기했었다. 그래서인지 아이는 ‘라 보카’를 언급하며 마치 자신이 그곳에 대해서는 좀 알고 있는 듯 말한다. “라 보카 집들이 알록달록 예쁘지.” 보드게임 <라 보카>는 ‘색색깔의 아름다운 도시’라는 수식어를 ‘라 보카’에게 붙여줬고, 아이는 그 수식어를 진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라 보카’에 대한 정보를 검색하다보면 ‘탱고의 발상지’ ‘형형색색 원색의 집들’ ‘치안이 위험한 빈민촌’이란 말이 함께 올라온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항구였던 이곳은 유럽에서 온 가난한 이민자들이 정착하면서 자연스레 빈민가가 형성됐다. 가난한 이민자들은 조선소에서 쓰다 남은 페인트로 자신들의 집 외벽을 칠했다. 페인트 통 밑바닥에 깔려있던, 버려질 페인트는 도시에서 밑바닥 생활을 하고 있는 이들에 의해 무채색의 마을 위에 덧대어지기 시작했다. 쓰일 곳 없는 조각 천을 이어 붙여 만든 퀼트이불처럼 그렇게 알록달록한 마을이 만들어졌다. 한 채의 알록달록한 집은 이상한 집이지만, 모든 집들이 알록달록하면 예술이 된다. 페인트 색의 수만큼 가난하고 아팠던 ‘라 보카’는 그렇게 예술이 되었다.
이민자 설움 깃든 탱고
가난한 이민자들은 보카의 부둣가에서 힘든 삶의 서러움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춤과 음악으로 풀어내기 시작했고, 그것이 탱고로 발전하게 됐다. 남녀가 얽힌 관능적인 몸동작은 19금 검열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다. 반도네온의 무겁게 깔리는 음색과 강렬한 악센트에 맞추어 스텝이 엉키는 탱고의 매력은 치명적이다.
‘탱고의 발상지’ ‘색색깔의 아름다운 도시’라는 수식어에도 불구하고 보카 지역은 여전히 위험의 빨간 경고등이 켜져 있다. 관광객이 많은 카미니토 거리를 제외한 지역은 여전히 치안이 위험한 빈민가다. 한 낮에도 카미니토 거리 외곽의 철도를 건너서는 안 된다. 프란체스코 교황의 조형물을 보기 위해 철도를 건너간다. 금단의 선을 넘어가는 기분이다. 경고의 빨간불이 점멸하는 속도에 맞추어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라 보카’는 그 어떤 무채색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색들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라 보카’에 오면 각기 다른 색의 벽 앞에서 사진을 찍어 그 사진들을 한데 모아 sns에 올리는 것이 여행자들 사이에서 유행이다. ‘라보카스러운’ 사진 콘셉트다.
카미니토 거리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은 뒤, 남편은 마라도나가 뛰었다는 보카 주니어스 경기장을 보러 가고, 아이와 나는 거리 카페에서 음료를 즐기며 보드게임을 한다. 지나가던 아르헨티노가 ‘uno’를 외치며 아는 체를 한다. 보드게임은 둘보다 셋이 하면 더 재밌다. 게임을 하며 친해진 우리 셋은 헤어질 때 사진을 찍고 sns 친구가 된다. 여행이 길어지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긴장의 벽이 낮아지는 것을 느낀다. 그 또한 여행의 연장선이다. 그러나 긴장의 벽을 허물어버릴 만큼 믿음의 벽이 높고 튼튼하지 않은 것도 현실이다. 어디서나 필요하나 정말 하기 어려운 ‘적당한 선을 지키는 것’을 잊지 말자!
피아졸라 음악에 흠뻑 빠져보자
아이는 아순시온에서 입던 교복을 챙겨 입는다. 피아졸라 탱고 공연을 보기 위해 나름 정장을 갖춰 입는 것이다. 피아졸라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르헨티나의 탱고 음악 작곡가이다. 공연장 입구에 피아졸라가 사용하던 반도네온이 전시돼 있다. 생김새에서 이국적인 매력이 풍겨온다. 피아졸라 탱고 공연은 탱고는 물론이고 반도네온을 중심으로 한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직접 들을 수 있다. 오케스트라의 힘인가? 음악이 탱고를 삼켜버리더니 나마저도 삼키나 보다. 피아졸라 음악에 흠뻑 젖어 탱고는 보이지도 않는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라 극장 앞은 픽업 택시 기사들로 혼잡스럽다. 택시기사들의 빠르고 시끄러운 에스파뇰 사이사이로 끊어질 듯 이어지는 반도네온 소리가 들린다. 반도네온 버스킹 연주자는 택시기사들에게 가려 보이지 않고, 반도네온의 심연 속으로 공기가 들고 나며 뱉어내는 소리가 마치 생과 사를 오가는 듯 쓸쓸하고 구슬프게 들려온다.
오늘은 카를로스 가르델(Carlos Gardel)이 살던 동네와 집을 보러간다. 카를로스 가르델은 영화 <여인의 향기> 삽입곡으로 유명한 ‘Por una cabeza’를 만든 음악가다. 카를로스 가르델의 동상과 사진, 흔적들이 있으나 관광지로 활성화되지는 않은 듯하다. 여행자들이 없어서인지 방치된 느낌이다. 음악을 좋아하는 남편은 그의 흔적을 따라가며 살짝 흥분한다. 눈요깃거리가 많은 곳은 아니지만 진정한 여행을 하는 기분이 들어 좋다.
모든 곳, 모든 사람이 탱고!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오면 탱고 공연을 실컷 보리라 다짐했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온 지 이틀 만에 나의 다짐은 의미가 없음을 깨달았다. 탱고 공연을 보는데 비장하게 다짐까지 했던 내가 우습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탱고를 보지 않는 것이 더 어렵다. 어디를 가나 탱고다. 거짓말 좀 보태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사람의 다리뿐 아니라, 사람이 건너는 다리도 탱고를 춘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랜드마크인 ‘여인의 다리’는 탱고를 추는 여인의 쭉 뻗은 다리를 형상화해서 만든 다리이기 때문이다. 탱고를 추는 ‘여인의 다리’는 운하의 중간 지점에 사람이 걸어 다닐 수 있도록 만든 다리인데, 레스토랑과 카페가 많아 여행자는 물론이고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시민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물론 그곳에도 거리에서 탱고를 추는 예술가는 있다.
우버를 타고 가며 바라본 벽화가 인상적이다. 벽화의 크기 때문인지, 남편도 스쳐 지나간 벽화이야기를 한다. 우리의 뇌리에 강하게 남는 것들을 생각해 보면 그 크기와 빈도수가 다른 것들에 비해 두드러지게 차이가 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맥락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탱고’는 압도적이다. 우리의 눈과 귀를 가만히 두지 않는다. 차를 타고 지나가며 보게 되는 거리의 벽화조차도 우리를 향해 달려든다. 그것도 엄청난 크기로. 한눈에 다 들어오지도 않는 반도네온 벽화가 남편을 가만두지 않았나 보다. 아침에 눈을 뜨니 남편이 보이지 않는다. 새벽에 걸어서 그 벽화에게 갔다는 남편의 얼굴이 피곤한데도 활기에 넘친다.
남미 여행 중에 늦은 밤 외출을 제일 많이 하고 있다. 탱고 공연이 늦은 밤에 하기 때문이다. 지난 번 피아졸라 탱고 공연장에서 시작하자마자 잠이 든 민주를 생각하니 미안하다. 팔레르모의 에어비앤비 숙소에 아이 혼자 두고 외출할 수 없으니 같이 움직여야 한다. 오늘 저녁 탱고 공연은 지난번 피아졸라 공연과는 조금 다르다고 하니, 놓칠 수 없다.
공연이 시작되고, 탱고에 빠져든다. 어른의 춤이기는 하지만 몸동작의 수위가 19금을 넘어서고 있다. 아이가 신경 쓰여 아이 쪽을 똑바로 보지도 못하고 힐끔 거리니 나지막한 남편의 목소리가 들린다. “괜찮아. 한 시간 전에 잠들었어.”
왕가위 영화 느낌 그대로인 ‘BAR SUR’
드디어 ‘BAR SUR’에 가는 날이다. 부에노까사 게스트하우스 사장님께서 민주를 봐 주시겠다며, 나의 시간을 온전히 즐기고 오라고 말씀하신다. 민주도 혼자 유튜브를 본다는 생각에 신이 나서 우리를 배웅한다.
왕가위 감독을 좋아한다! 좋아했다? 아무튼, 부에노스아이레스라는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정체를 알 수 없는 가슴앓이를 하게 만든 것이 왕가위 감독의 <부에노스아이레스:HAPPY TOGETHER>이었다. ‘BAR SUR’에 들어서는 순간, 난 영화 속으로 걸어가는 듯 착각을 한다. 흑백의 체크무늬 바닥의 홀, 벽으로 다닥다닥 붙은 테이블, 어두컴컴한 실내. 양조위가 일하던 BAR SUR다. 영화를 위해 세트장을 만든 것이 아니라 날 것 그대로의 BAR SUR 안으로 카메라 앵글이 들어왔던 것이다. 흑백 체크무늬의 좁은 홀에서 탱고를 추고, 늙은 악사는 연주를 하고, 웨이터는 댄서의 춤을 방해하지 않고 요령껏 술을 나른다. 격렬한 동작의 탱고는 기어코 테이블 위의 와인 잔을 발로 차 떨어뜨린다. 와장창 소리에 관객의 술렁거림은 아주 잠시, 댄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춤을 추고, 웨이터는 익숙한 듯 빗자루로 깨진 유리조각을 쓸어낸다. 이 모든 것이 현실이 아니라 영화 속 세상 같다. 아이는 아이대로 유튜브와 함께, 남편은 카메라와 함께, 나는 20대 끝자락의 나와 함께 온전히 행복한 시간이다.
BAR SUR의 늙은 악사는 무표정한 얼굴로 기계처럼 바이올린의 활만 움직인다. 그런 그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다. 과장된 제스처 없이 오롯이 연주에만 몰두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당당함이 그에게 있다. 무대도 조명도 없는 홀에서 연주를 해도 초라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이 그에게서 느껴진다. 자신의 연주를 끝낸 악사는 홀의 테이블에 앉아 탱고를 감상하고, 난 그에게 존경의 눈길을 보낸다.
<여인의 향기>에서 알 파치노가 말한다. 만약 실수를 하면 스텝이 엉키고, 그게 바로 탱고라고. 누군가가 이야기했다. 여행이 계획한 대로 되지 않으면, 그때부터 진정한 여행이 시작되는 거라고. 여행이 계획한 대로 되면 그건 여행이 아니라 관광이라고.
한국에서 간간히 들려오던 코로나19 소식이 급물살을 탄 듯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이제 정말 여행이 시작되는 걸까?
ㆍ글 강주혜
ㆍ사진 김정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