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50에 배낭 메고 떠난 가족 여행 23화

아는 만큼 상상할 수 있는 곳, 멕시코 멕시코시티

2022-05-15     월간경남

신들의 도시, ‘테오티우아칸(Teotihuacan)’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숙제가 있다. 멕시코 여행 계획을 짜며 ‘반드시 가야할 곳’ 목록에 오른 곳을 가야 한다. 내가 여행을 하면서 ‘반드시 ~것’의 리스트에 올리는 것은 두 가지 이유 중 하나일 경우이다. 내가 원하거나, 그곳을 찾는 다수가 원하여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다 결국은 나조차도 원하게 되는 것. 물론 남은 숙제는 후자다.

테오티우아칸의 상징, 태양의 신전 피라미드

신들의 도시, ‘테오티우아칸(Teotihuacan)!’ 
인터넷의 정보는 세계사 시험을 치기 위한 이들에게 필요한 정보들이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정보가 아닌 상상력이다. 1864년부터 시작된 발굴 작업은 이제 겨우 10분의 1정도 마무리된 상태인데, 그 면적만 여의도 4배에 달한다고 한다. 그 넓은 면적이 채워야 할 여백의 시험지가 되어 내 앞에 펼쳐진다. ‘아는 만큼 보인다’란 말은 곧 ‘아는 만큼 상상할 수 있다’라는 말로 바뀌면서 무너진 건물들을 보며 상상의 궁전을 짓고, 굴러다니는 돌들로 신전을 쌓아야 한다. 황량한 옛터에 나만의 도시를 건설해야 한다. 내가 테오티우아칸을 계속 미루게 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상상력의 부재!
얼음물과 점심 도시락을 준비하고 선크림을 듬뿍 바른다. 모자와 선글라스, 긴소매 옷은 필수다.
마음의 준비도 같이 하고 싶지만, 이런 준비가 어디 하루아침에 되는 것인가. 멕시코시티에서 출발하는 투어버스를 이용할 수도 있으나, 배낭여행자로서 객기를 부려 본다. 시간에 쫓기기보다 여유 있게 둘러보자며 멕시코시티 북부버스터미널로 향한다. 멕시코시티 북부버스터미널에 도착도 하기 전에 내 몸의 비상벨이 울린다. 며칠 전부터 시작된 물갈이가 잠잠하더니, 시외로 간다는 긴장감이 다시 나의 장을 자극하기 시작한다. 오늘 또 몇 번이나 천당과 지옥을 오갈지.

 

실내뿐 아니라, 야외에도 유적을 옮겨 놓았다
뱀과 가슴을 드러낸 모습을 보아 아마도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조각상인 듯하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큰 피라미드 유적지

테오티우아칸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큰 피라미드 유적지이다. 14세기경 아즈텍인들에 의해 발견된 이곳은 그 규모에 놀란 아즈텍인들이 신들의 도시로 떠받들면서 ‘테오티우아칸(신들의 도시)’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테오티우아칸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단연 태양의 신전 피라미드이다. 피라미드는 이집트 피라미드와 동의어가 되어 내 머릿속에서 고유명사로 자리 잡고 있었음을 테오티우아칸의 태양의 신전을 보며 깨닫는다. 그늘 한 점 없는 뙤약볕 아래 제법 걸었는데 태양의 신전이 가까워지지 않는다. 크기에 압도 당해 내가 가진 상식적인 원근감에 오류가 발생했나 보다. 피라미드 가까이 가자 그제야 신전의 계단을 오르는 사람들이 보인다. 안전을 위해 설치한 손잡이를 잡고 걸어도 쉽지 않아 보일 정도로 계단의 경사는 가파르다.

태양의 신전 피라미드, 경사가 가파르다

태양의 신전은 원래 지금보다 높은 제단이 있었으나, 지금은 소실되어 높이가 66m정도가 된다. 안전줄도 없었을 가파른 계단을 올라 신께 제사를 지내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제단에 올릴 제물을 들고 250여 개의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 제사장, 한 치의 흐트러짐도 용납할 수 없는 경건한 분위기다. 태양은 불의 칼이 되어 제사장의 정수리에 내리꽂힌다.
바위를 기어오르는 개미처럼 기다시피 태양의 신전을 오른다. 해발 2,300m에 위치한 테오티우아칸이기에 마음만큼 몸이 쉽게 움직여지지 않는다. 숨이 가빠 몇 차례 호흡을 가다듬는다. 태양의 신전이란 이름은 그냥 붙여진 게 아니다. 신전 정상에 오르자 당연한 듯 머리를 들어 하늘을 보게 되나, 정작 태양과는 눈을 맞출 수 없다.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 태양 앞에서 우리는 약하디 약한 인간일 뿐이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으로 시선을 돌리자 광활한 고원에 숨이 막힌다. 태양의 신전을 짓는데 250만 톤의 돌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신전이 지어졌을 당시 저 땅에는 어떤 이들이 살고 있었을까? 아이도 빈 터를 보며 생각에 잠겨있다. 아이는 저 광활한 빈 터에서 무엇을 보고 있는 걸까?

태양의 신전에서 광활한 들판을 보고 있는 아이, 멀리 달의 신전이 보인다

태양의 신전을 오르고 나니 체력이 바닥이다. 아이와 남편은 달의 신전에 오르고 있다. 달의 신전은 태양의 신전과 겉모습은 비슷하지만 크기가 약간 작다. 달의 피라미드에는 사람의 심장을 신에게 바쳤던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한다. 보름달이 뜬 밤, 달의 신에게 바쳐진 심장에는 인간의 무슨 욕망이 담겨있었을까?

 

파란색 벽이 시선을 사로잡는 프리다 칼로 미술관

오늘은 미뤄둔 숙제가 아니라, 마지막에 먹으려고 아껴둔 제일 맛있는 사탕을 먹는 날이다.
파란색 벽이 시선을 사로잡는 프리다 칼로 미술관이다. 미술관에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파란색 벽을 따라 줄을 서 있다. 그 풍경조차 작품이다. 아이와 나도 작품 속 등장인물이 되고 싶은 마음에 뛰어간다. 프리다 칼로의 작품을 특별히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림’은 다 좋아하기에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그녀의 작품 세계가 궁금하기도 하다. 프리다 칼로 미술관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돈을 지불하고 스티커를 받아야 한다. 사진을 찍지 않아도 되니 작품에 더 몰입하게 된다.

프리다 칼로의 휠체어와 이젤

프리다 칼로의 그림을 보고 있으니 불편하고 힘들다. 그림 속에 그녀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아프다. 달콤한 멜로드라마만 보다가 고단한 삶이 진하게 묻어 있는 논픽션드라마를 보는 기분이랄까. 자신의 상처를 어떠한 은유도 없이 민낯 그대로 작품 속에 옮겨놓으면 치유가 될까? 상처가 완전히 치유가 되었기에 자신의 상처를 거리낌 없이 작품 속에 풀어놓을 수 있었던 걸까? 나의 우문에 답하듯 영화 <코코> 속 ‘프리다 칼로’는 익살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프리다 칼로를 추모하는 추모관

그녀의 사상이, 그녀의 사생활이, 그녀의 일상이 도슨트가 되어 그녀의 그림을 설명하고 작품에 풍성함을 더해 준다. 개인적인 취향의 그림은 아니지만 원화가 주는 감동이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다. 프리다 칼로가 나에게 특별한 화가가 되는 순간이다. 이제 어딘가에서 프리다 칼로의 ‘프’만 들어도 반가움에 활짝 웃게 되겠지!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가 된 아이와 남편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인 멕시코 국립인류학박물관

아이는 물을 보자마자 뛰어간다. 분수다. 물이 밑에서 위로 올라오는 형태의 분수가 아니다. 나무처럼 우뚝 선 돌기둥이 지붕을 받치고 있고, 그 지붕에서 물이 쏟아지고 있다. 빨렝게의 고대 마야의 유적지에 있는 생명의 나무를 모티프로 만든 거대한 분수탑이다. 분수의 기둥에는 신화의 소재가 조각되어 있다. 박물관 입구의 탑이 이 정도이니 저 안에는 얼마나 엄청난 것들이 있을까, 기대감이 최고조에 달한다.

생명의 나무를 구현한 분수탑, 기둥의 조각상도 눈길을 끈다

멕시코 국립인류학박물관(Museo Nacional de Antropologia)은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로 60만 점에 달하는 유물이 있다. 고고학에 관심이 많은 이들은 이곳을 방문하기 위해 멕시코시티로 여행을 온다고 할 정도로 유명한 곳이다. 
고고학에 대한 상식이 부족해 전시된 유물을 보고 감탄하는 것은 태반이 시각적 자극에 대한 반응이다. ‘BC~’로 시작하는 연도도 감탄에 한몫을 한다. 현대의 예술품과 비교해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세련됨과 정교함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그 당시의 열악한 도구와 오로지 자연과 자신의 상상력을 모티프로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생각한다면 인류 최초의 예술가는 곧 인류 최고의 예술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엄청난 크기의 두상이다. 만약 전신상이었다면 얼마 큰 조각상이었을까
요즘 아이들이 꾸미는 다이어리 생각이 난다. 무슨 내용이 적혀 있을까

이제는 해독이 가능하다는 마야의 상형 문자들은 글자 하나하나가 예술품이다. 익살스런 표정의 조각상들은 우리를 향해 ‘메롱’ 하고 혀를 내밀며 ‘우리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맞혀 봐’라며 약을 올리고 있다. 세련된 패턴의 기하학 문양은 그대로 실크에 프린트 하면 멋진 스카프가 될 것 같다. 24톤 무게에 지름이 3.75m인 아즈텍의 달력인 ‘태양의 돌’은 일단 그 크기에 기가 죽는다. 감탄에 감탄이 더해지니 걸음은 느려지고 작품 앞에 서 있는 시간이 길어진다. 돌에 새겨진 문양의 상징들은 후대인들의 상상력이 더해져 신화가 되고, 역사가 되고 문화가 되고 있다. 만약 내가 고고학에 대한 조예가 깊었다면, 이 유물들 곁에서 그대로 망부석이 되고 싶었을 지도 모르겠다. 시계를 계속 보던 남편의 눈에서 화살이 날아온다. 피해라!

프랑켄슈타인이 생각나는 고대 유물

남편의 눈 화살을 피해, 아이의 손을 잡고 인류 최초의 이브가 있는 전시실로 달아난다.
인류 최초의 이브, 루시의 모형을 보고 아이보다 내가 더 놀라고 반가워 한다. 베르베르 베르나르의 <아버지들의 아버지>란 책을 읽고 최초의 인류는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생각하며 마음 한구석이 아팠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앞에 있는 루시의 모형이 나의 어머니의 어머니라도 되는 듯 뭉클하다.

인류의 진화과정이 그려진다

이번 전시실에는 영장류의 탄생부터 인류가 진화해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원시 인류의 생활상을 시대와 분야별로 미니어처 인형으로 재현해 놓고 있다. 인류가 진화해 가는 과정의 흔적을 보며 나는 점점 빠져들고 아이는 점점 지쳐간다. 아이는 과부화가 걸린 듯 표정이 사라지며 보는 둥 마는 둥이다. 라스코 동굴 벽화를 가리키며 아이의 관심을 끌려 하나 역부족이다.

라스코 동굴의 벽화는 초기 인류의 삶의 흔적이다

남편의 눈 화살과 무표정하게 변해가는 아이 얼굴이 상징하는 바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기원전 수세기 전의 돌덩이에 새겨진 상징을 아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냐는 소리가 들린다. “그래, 이제 집에 가자.” 
‘아끼다 똥 됐다’란 말이 있다. 멕시코시티에 도착하자마자, 인류학박물관에 왔더라면 한 번 더 올 수 있었는데, 아끼다 똥 됐다. 
처음은 어설프다. 어설퍼서 아쉽고, 아쉬우니 자꾸 생각난다. 자꾸 생각이 나니 잊히지 않고, 잊히지 않으니 그리워진다. 멕시코시티가 그렇다.
우리의 첫 여행지 멕시코시티. 처음이라 낯설고 무서웠지만 그만큼 설레기도 했던 도시. 내일 떠난다 생각하니 이곳이 이제 우리에게 제일 익숙한 도시라는 자각을 하게 된다. 떠나기도 전에 아쉽고 그리운 우리 가족의 첫사랑 멕시코시티, Adios!

 

ㆍ글 강주혜
ㆍ사진 김정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