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50에 배낭 메고 떠난 가족 여행 18화
자연 속으로 풍덩 멕시코 ‘플라야 델 카르멘’
‘그래, 감으로 하면 되는 거야!’
긴장이 되긴 하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남편에게 내뱉는다.
“앉아 봐, 내가 시원하게 밀어 주겠어!”
장기 여행자들 중 직접 머리를 깎으며 다니는 이들도 있다기에, 우리도 바리캉과 미용 가위를 준비해 왔다. 바리캉으로 머리를 미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는 말을 들었다. 한 번도 해 보지는 않았지만 헤어디자이너 지인이 하는 것을 보며, 눈으로 귀로 배웠다. 옆에서 몇 번 보니, 충분히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기기도 했다.
처음 든 바리캉 ‘하얀 땜빵’
비닐봉지를 대충 잘라 목에 두르고 과감하게 남편의 목 뒤쪽에서 정수리 방향으로 바리캉을 갖다 댄다. ‘위잉’ 소리와 함께 바리캉이 닿기가 무섭게 머리카락이 잘려져 나간다. 미처 마음의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놀란 마음을 감추며 바리캉을 떼자 하얀 속살이 드러난다.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이발기 날이 눈에 들어온다. 3호기를 끼우라고 했는데. 잊었다. 이발기 날을 끼우고 이제 자신 있게 밀기만 하면 되는데, 머리카락과 함께 자신감도 잘렸는지, 하얀 속살이 계속 거슬린다. 만화책에서 보던 하얀 ‘땜빵’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남편이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자리다. 주춤거리는 내게서 바리캉을 뺏더니, 직접 밀기 시작한다. 머리를 다 밀고 나니, 하얀 땜빵이 더 두드러진다. 저렇게 나갈 수는 없다. 모자로 가려지지도 않는 애매한 위치다. 정말 저 자리만 시원하게 밀었다.
“두건을 쓰자! 당신 은근히 두건이 잘 어울려.”
신나는 동심 ‘천연워터파크’로
워터파크라는 말에 아이는 어젯밤부터 신났다. 천연워터파크라고 하는데, 어느 정도 수준인지 알 수가 없다. 아이는 아무래도 한국에서 갔던 놀이 기구 가득한 워터파크를 상상하나 보다.
플라야 델 카르멘에서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셀하 워터파크(Xel-Há Park).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식사, 음료, 술과 썬 베드, 구명조끼, 스노클 장비가 무료로 제공되는 올 인클루시브 워터파크다.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액티비티가 있으나, 즐길 거리가 많기에 이용하지 않기로 한다.
셀하에 들어서는 순간, 천연 워터파크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 것 같다.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 카리브해가 그대로 담겨 있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선에서 즐기며 쉴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사람뿐 아니라 이구아나, 새들이 자유롭게 다닌다. 4~5개의 레스토랑이 있어 편하게 이용하면 된다. 사람이 남긴 음식을 먹기 위해 제법 큰 새들이 레스토랑 안을 들락거린다. 아무도 새를 쫓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나무와 풀들 사이로 난 길을 걷다 보면 이구아나가 천연덕스럽게 길을 막고 있다. 그들이 주인이다. 스노클 장비를 착용하고 물속으로 들어가면 물고기들이 헤엄쳐 다닌다. 물이 짭조름하다.
유수풀 따라 다이빙 절벽으로
튜브를 타고 나무가 만든 터널을 헤치고 가니, 동화나라에 온 것 같다. 인공 유수풀이 아니기에, 물의 속도는 자연이 조정한다. 바람이 잔잔해 물의 흐름이 빠르지 않다. 아무도 서두르지 않는다. 나무 터널을 빠져 나오자 시야가 넓어지며, 사람들의 환호성 소리가 들린다. 절벽에서 다이빙을 하고 있다. 저 정도 높이는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아이와 둘이 절벽 위로 올라간다. 위에서 내려다 본 물은, 무섭다. 몇 번의 망설임 끝에 성공! 아이는 걸어 올라갔던 길을 다시 걸어 내려온다. 아이의 기분이 좋지 않다. 튜브를 타고 물결을 따라 떠내려가다 보니, 다시 다이빙을 할 수 있는 절벽이다. 아이는 다시 절벽으로 향한다.
“You can do it! You can do it! You can do it!”
아이의 망설임이 길어지자, 튜브에 탄 사람들이 아이를 향해 응원을 하고 있다. 벌써 30분이 지났다. 아이를 향해 응원하는 목소리는 점점 늘어나, 강 위의 모든 사람들이 아이를 보고 있다. 남편과 나는 다른 목소리로 응원한다.
“민주야~ 포기해도 괜찮아! 포기해도 돼~”
두근두근 다이빙에 신나는 집라인
아이가 포기해도 괜찮다는 응원은 진심이다. 다이빙은 아무것도 아닌데, 괜한 걸로 아이가 힘들어 할까 걱정이다. 사람이 살다 보면 포기할 수도 있고, 시작한 일을 끝까지 마무리 못 할 수도 있다. 그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다.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면 되는 거다.
강 위의 사람들은 한마음으로 아이를 응원하고, 30분이 넘게 망설이던 아이가 절벽으로 뛰어내리자 응원하던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친다. “Bravo!”
아이는 상기된 표정으로 우리를 향해 헤엄쳐 온다. 무용담처럼 다이빙의 순간을 이야기한다. 기쁨이 넘쳐흐르는 표정이다. 저 충만함이 아이에게 선물이구나. 아이고, 이 녀석 애썼다.
셀하는 인공 워터파크보다 덜 자극적이고, 짜릿한 스릴은 없지만, 빛이 없는 동굴에서 헤엄치다, 뚫어진 틈 사이로 들어오는 가느다란 햇빛 한 줄기가 얼마나 눈부시게 밝은지 알게 한다. 와이어를 잡고 물 위를 가로지르는 집라인은 나를 타잔으로 만들어 주기도 한다. 아이를 위해 온 셀하에서 우리가 더 즐겁다.
깊고 잔잔한 싱크홀 ‘세노떼’
멕시코 죽음의 날을 배경으로 한 영화 <코코>에 나오는 세노떼의 모티브가 된 세노떼가 있다는 소문을 유카탄 반도에 오기 전부터 들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곳에 가야해!
익킬 세노떼(Ik Kil cenote)다.
큰 우물이 하늘을 향해 열려 있고, 길게 늘어진 초록의 나뭇가지와 나뭇잎은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하는 전구처럼 우물 테두리를 장식하며 햇빛과 바람의 도움으로 반짝이며 흔들리고 있다. 그 가운데는 명명할 수 없는 빛깔과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물이 가득 차 있다. 물을 향해 내려간다. 아래로, 그렇게 20미터 쯤 내려가면 물이다. 물의 깊이는 40미터 정도 된다고 한다. 셀하에서 동굴에 물이 고여 있다 생각했는데 그곳도 세노떼였다. 유카탄 반도에는 2,500개가 넘는 세노떼가 있다고 한다. 세노떼는 일종의 싱크홀이다.
하늘과 물, 신비로운 빛의 향연
세노떼 안의 공기는 서늘하다. 물은 깊고 잔잔하다. 짙고 탁해 보이는 물은 맑고 깨끗하다.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세노떼는 그대로 우리에게 들려준다. 우리의 소리도 공기 중에 흩어지지 않고 세노떼에 부딪혀 돌아온다. 물속에 들어가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하다. 세노떼에서 올려다 본 하늘은 하늘이 아니라 빛의 덩어리다. 그 빛은 세노떼를 향해 그대로 내리 꽂혀 물에서 반짝거린다. 신비롭다.
아이는 이제 물로 뛰어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셀 수도 없이 세노떼를 향해 뛰어든다. 무서워 주춤거리는 노란 머리의 언니에게 “You can do it!”이라며 자기가 받은 응원을 나눠준다. 남편은 우리의 응원에 힘입어 제법 높은 포인트에서 뛰어내린다. 아이는 아빠에게 존경의 눈빛을 보낸다.
대개는 핑크라군이나 치첸이트사, 바야돌리드와 패키지로 다녀오는 곳이다. 우리는 익킬에서 충분한 시간을 갖고 즐기러 왔다. 패키지로 다녀온 여행자들 중 이곳을 추천하지 않는 경우가 있긴 하다. 하루 종일 세노떼에 있다 보니 추천하지 않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가이드를 따라와 구경만 하고 가는 이들을 보니 내가 더 안타깝다. 물속에 뛰어들지 못하고 바라만 보는 물은 고문이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여행자들의 선상파티
오늘은 칸쿤으로 간다. 여인의 섬(Isla Mujeres: 이슬라 무헤레스) 투어를 하며 카리브해를 제대로 즐겨볼 참 이다.
페리에 오르자마자 파티 시작이다. 술과 음료 간단한 안주를 든 이들이 자유롭게 다니고 있다. 끊임없이 음악이 쿵쾅거리고 파티 진행자가 여행자들의 국적을 물어보며 환영의 환호성을 질러준다. 동양인은 우리 가족뿐이다. 이런 문화에 익숙한지 다들 자유롭다. 모두들 언제든 바다에 뛰어들 준비를 한 듯, 수영복 차림이다. 페리에서 비키니를 입지 않은 여자는 두 명이다. 나와 민주. 술을 마시며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며 파티를 즐긴다. 나는 출렁거리는 파도에 맞춰 흔들리며 먼 바다를 본다. 꿈꾸는 것 같다. 컴퓨터 바탕화면 속에 들어와 앉은 듯 고요해진다. 술도 춤도 나와는 거리가 멀다. 스페인어를 모르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저들의 노래 소리와 말소리는 내게 그저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소리 같은 자연의 소리일 뿐이다. 우리 셋은 조금 어색하다. 아니 조금 불편하다. 그래도 이곳이 카리브해라는 사실이 어색함과 불편함을 다 덮어버릴 만큼 좋으니 다행이다.
카리브해에서의 작은 표류
카리브해 한가운데에 배가 멈춘다. 구명조끼와 스노클 장비를 착용하고 카리브해에 뛰어 든다. 바다 한가운데 뛰어드는 순간 나의 온 감각은 당황하기 시작한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물이 공포로 다가 오고, 눈앞의 사람들과 배가 점점 멀어진다.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바닷물이 출렁이는 소리는 실체도 없는 바람소리와 섞여 마치 늘어진 녹음테이프의 소리처럼 들린다. 파도라고 부를 수도 없는 작은 출렁거림이 나를 배에서 멀어지게 한다. 아무리 열심히 팔을 저어도 제자리거나 뒤로 밀려난다. 민주가 나를 잡아준다. 나는 민주 걱정, 민주는 내 걱정. 민주아빠는 보이지 않는다.
구릿빛 피부의 팔뚝이 굵은 선원이 우리를 향해 헤엄쳐 온다. 책이나 영화에서 만났던 전형적인 바다 사나이가 우리를 구한 것이다.
“민주아빠 안 보이던데?”
“응…. 그게…. 난 바다에 들어가는 순간 바로 손을 흔들며 올려 달라고 했지.”
카리브해를 제대로 즐겨보자고 한 것은 무지에서 오는 오만이었음을 고백한다. 바다에 뛰어들어 수영을 즐기는 외국 여행자들을 보며, 바다 수영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수영장에서 물에 머리를 넣고 하는 수영은 이곳에서 통하지 않는다. 지구라는 행성의 70%가 바다인데, 바다 수영을 할 줄 모르다니!
낯섦 끝에서 만난 아름다움
우리는 이상하고 아름다운 세상 깊숙이 들어온 것 같다. 나의 감각들은 당황한다. 낯섦이 주는 당혹감이 쉽게 가시지는 않는다. 낯섦을 따라가니 그곳에 자연이 있다. 자연의 일부인 내가, 자연이 낯설다는 사실이 더 이상하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세상이 이상한 건 아닐까? 이상하고 아름다운 나라가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다. 여행을 마치고 다시 돌아가는 세상에서 나의 감각들은 또 어떤 반응을 보일까?
ㆍ글 강주혜
ㆍ사진 김정태